피부 아래 숨겨진 것은
나는 종종 공포영화, 그중에서도 고어 물을 즐겨 본다. 목과 팔다리가 잘리고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낭자한. 볼 때마다 나는 신기하다. 익숙한 우리의 피부를 단 한 겹만 벗기면 드러나는 낯선 풍경, 혈관과 근육과 뼈들, 내장들, 그것은 나인데 내가 아니다. 내 아래 존재하는 세계지만 우리는 그 세계와 마주한 순간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힐러리 맨틀의 단편집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이것이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이 세계란 얼마나 위태로운가, 피부와도 같은 연약한 껍질에 간신히 유지되고 있을 뿐인데. 읽으면서 가장 소름이 돋았던 단편 와 의 태연하고도 잔인한 문장들, 65쪽, 메리는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운명, 그러니까 두들겨 맞고, 몸이 뒤틀리고, 가죽이 벗겨지는 운명들을 지루하게 곱씹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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