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ala초코 2012. 1. 24. 14:06
89쪽, "호치키스." 민기가 중얼거렸다. "뭐야?" 영재와 성민이 물었다. "나는 이상하게 호치키스라고 말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 왜 그럴까?" 민기가 다시 호치키스, 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자 영재가 누구나 자기만의 주문이 있는 법이야, 하며 민기의 어깨를 두드렸다. "껌으로 막힌 열쇠 구멍. 그게 내 주문이야." 성민이 말했다. (나는 눈을 감고 통조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어느 공장의 풍경을 그려보았다.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나는 수십만 개의 통조림을 만드는 공장의 기계를 상상해보곤 했다. 그러면 금방 배가 고파졌다.)
<웃는 동안>


 윤성희의 소설은 사소하다. 버려진 선풍기를 보며 갑자기 눈물을 보이는 여자가 소설의 주인공이 된다(부메랑). 윤성희의 소설은 따뜻하다. 버스도 안 타면서 버스정류장에 앉아 오렌지주스를 마시는 남녀를 본 버스기사는 연애를 하려면 커피를 마셔야 한다며 커피를 판다(5초 후에). 윤성희의 소설은 비극적이다. 귀신이 등장하는 소설만 세 편이다(어쩌면/웃는 동안/눈사람). 그럼에도 윤성희의 소설은 희극적이다. 그 귀신들의 행동과 말이 슬프게만 느껴지진 않아서('눈사람'은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단편들에서 내 나름대로 골라본 공통점들이다.
 사소한 삶의 순간에서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짧은 단문의 문장들은 읽은 이를 잔잔하게 위로한다. 특히 주인공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를 되뇌이며 주문을 외우는 장면들이 참 좋았다. <어쩌면>에서 귀신이 된 네 명의 소녀들이 공중부양을 하게 되는 힘이 좋아하는 단어를 떠올리는 거였다. 절친한 친구를 잃은 세 명의 소년, 아니 남자들도 좋아하는 단어를 주문처럼 외우며 껄껄 웃는 <웃는 동안>의 마지막 장면도 따뜻하다. 나의 주문의 단어는 무엇인가? 당신의 주문의 단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