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독서/소설의 그림자

읽고 또 읽는 제인 에어

koala초코 2012. 3. 11. 22:40

제인 에어 1 - 10점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민음사

 

 BBC에서 제작한 드라마 <제인 에어>4부작을 보고 활활 불타올라 그만 2권짜리 원작도 단숨에 읽어버렸다. 읽어도 읽어도 재미있는 제인 에어의 힘은 15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118쪽, 세상에는 완전한 사람이란 없을 텐데! 맑게 비치는 달의 표면에도 검은 티는 있는 법인데 스캐처드 선생과 같은 사람의 눈에는 사소한 결점만 뜨일 뿐 천체에 넘쳐흐르는 찬란한 빛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197쪽, 나를 탓하는 사람이 있을까? 틀림없이 많이 있을 것이다. 분수에 맞지 않게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안절부절못하며 안정을 갖지 못하는 것은 나의 타고난 성품이었고 그것이 어떤 때는 고통이 될 경우도 있었다. 그런 때면 조용하고 한적한 삼층의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갖가지 환영에 마음의 눈길을 보내어 지켜보는 것이 나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 환영은 수없이 빨갛게 타오르는 것이었다. 또는 내 마음을 기쁨의 파도에 맡기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괴로울 때 부풀어 오르는 수도 있었지만 생기도 부풀게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제일 큰 낙은 결코 그칠 줄 모르는 얘기에 마음의 귀를 기울이는 일이었다. 그것은 나의 상상력이 지어내어 끊임없이 지껄여댔고 간절히 소망하면서도 현실 생활에서는 얻지 못하였던 갖가지 사건, 생활, 정열이 담긴 얘기였다.
 사람이란 안온한 생활에 만족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해 보았자 그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사람이란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엔 필경 만들어내고야 만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나보다도 평온한 생활에 얽매여 있고 또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 운명에 말없이 항거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반란을 제외하고서도 얼마나 많은 반란이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격동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성은 대체로 평온한 존재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오빠나 동생들과 똑같이 자기의 능력과 노력을 발휘할 터전을 필요로 하고 있다. 너무도 가혹한 속박, 너무나 완전한 침체에 괴로워한다는 점에선 여성도 남성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여성들이란 집안에 처박혀서 푸딩이나 만들고 양말이나 짜고 피아노나 치고 가방에 수나 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들의 소견 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관습에 의해서 여성에게 필요하다고 선고된 일 이상의 것을 하고 또 배우려고 하는 여성을 탓하거나 비웃는 것은 소갈머리 없는 짓이다.


 제작년이었나 예전에 읽을 때 이 부분에 밑줄을 쫙쫙 그어놓았던 나에게, 지금의 나도 조용히 동의하며 제인 에어의 열정적인 독백을 곱씹는다. 특히 이번 독서에서는 제인 에어의 거침없는 상상력과 삶에 대한 열정이 강하게 느껴졌다. 시대의 속박을 넘어서서 한 명의 인간이 되고 싶어했던 그녀는 로체스터를 통해 사랑을 알게 되지만 그에게 아내가 있었으며 결혼할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에게서 도망친다. 그와 대등한 인간 대 인간으로 설 수 있게 되어서야, 그녀는 그와 진정으로 결합한다.
 그리고 이 부분...제인과 로체스터가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는 고백 장면은 영화에서 볼 때도, 드라마에서 나올 때도, 소설로 읽을 때도 자꾸만 눈물이 난다.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다. 신분과 재산의 제약을 넘어서서 진짜 사랑을 한다는 것을 작가는 바로 이 부분에서 제대로 보여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31쪽, "당신에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기 위해서 제가 눌러 있을 줄 아세요? 제가 무슨 자동인형인 줄 아세요? 감정도 없는 기계로 아세요? 그리고 입에 문 빵조각을 잡아채이고 컵에 담긴 저의 생명수가 엎질러지는 것을 참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가난하고 미천하고 못생겼다고 해서 혼도 감정도 없다고 생각하세요?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혼도 있고 꼭 같은 감정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복이 있어 조금만 예쁘고 조금만 부유하게 태어났다면 저는 제가 지금 당신 곁을 떠나기가 괴로운 만큼, 당신이 저와 헤어지는 것을 괴로워하게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저는 지금 관습이나 인습을 매개로 해서 말씀드리는 것도 아니고 육신을 통해서 말씀드리는 것도 아녜요. 제 영혼이 당신의 영혼에게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마치 두 영혼이 다 무덤 속을 지나 하느님 발밑에 서 있는 것처럼, 동등한 자격으로 말이에요. 사실상 우리는 현재도 동등하지만 말이에요!"
 "현재도 동등하다!" 로체스터 씨는 되풀이했다. "그래." 그는 덧붙여 말하곤 나를 두 팔로 감아 가슴에 끌어안고 그 입술로 내 입술을 눌렀다. "그래요, 제인!"
 "네, 그래요." 나는 대꾸했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아요. 당신은 결혼을 하셨는걸요. 아니 결혼을 하신 거나 마찬가지죠. 그런데 당신께서는 당신보다 열등한 사람과, 서로 아무런 공감도 가질 수 없는 사람과 결혼하신 거예요. 당신은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시지 않아요. 그분을 멸시하시는 것을 저는 보기도 하고 듣기도 했어요. 그런 결합이라면 전 멸시하겠어요. 그러므로 제가 당신보다 나은 거예요. 절 놓아주세요."
 "어디로 가게, 제인? 아일랜드로?"
 "네. 아일랜드로요. 전 제 심정을 다 털어놓았어요. 그러니까 이젠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제인, 가만있어. 이렇게 버둥대지 마요. 마치 제 분에 못 이겨 제 털을 뜯어내는 사나운 미친 새 같군그래."
 "전 새가 아녜요. 그러므로 어떤 그물로도 저를 잡을 수는 없어요. 저는 자주적인 의지를 가진 자유로운 인간이에요. 그 의지력으로 저는 지금 당신 곁을 떠나는 거예요."
 다시 한 번 힘을 쓰자, 내 몸은 풀려났다. 그리고 나는 그의 앞에 똑바로 섰다.
 "그럼 당신의 의지가 당신의 운명도 결정하겠군." 그가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내 손과 마음과 전 재산의 일부를 바치리다."
 "광대놀음을 하시는군요. 전 그런 건 비웃고 말 뿐이에요."
 "나는 당신에게 평생을 내 곁에 있어주기를 원하고 있는 거요. 나의 분신이 되어 다시없는 이승의 반려자가 되어달란 말이오."

 

읽고 또 읽고 평생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에 고전이라고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