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독서/소설의 그림자

다른 세계에서 은어낚시통신이 도착했다

koala초코 2012. 3. 24. 12:38
은어낚시통신 - 8점
윤대녕 지음/문학동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기나긴 연도를 가득 메우고 지나가는 장례 행렬을 목격했다. 그때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진, 그 애는 돌아오지 않는다!
 터덜거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묵은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대전을 떠나올 때 가판대에서 사서 읽지도 않고 여행가방에 쑤셔넣었던 것이었다.
 거기서 나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최근에 한국을 다녀간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강연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 글이었다.

 이날 오후 호킹 교수의 우주 강연회가 열린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룸은 시작 삼십 분 전부터 초만원을 이루었다. 강연은 "내 목소리가 들리느냐"는 호킹 교수의 언어합성기 소리에 청중이 "예"하고 크게 답하면서 시작됐다.
 "1973년에 나는 블랙홀이 검지 않고 일부의 빛과 입자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입자의 정확한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소립자의 일부가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여 블랙홀을 벗어난 것이다. 이렇게 탈출한 입자는 우리가 사는 우주에서 떨어져나간 작은 '아기 우주'에 들어간다. 이러한 일은 물론 '실제 시간'이 아니라 '허수 시간'에 일어난다. 또 입자들이 스스로 출구를 선택할 수도 없다.
 요약하건데 우주의 작은 영역으로 물질이 충분히 농축되면 블랙홀이 형성된다. 이 블랙홀에는 모든 것이 빠져들지만 개별 입자가 빛보다 빠를 경우 탈출도 가능하다. 우주에는 우리가 충분히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태초에 생성된 블랙홀이 많이 있을 것이다. 블랙홀에서 빠져나온 입자는 작은 아기 우주로 사라져 또다른 블랙홀을 통해 우주로 방출된다. 이것이 우주의 모습이다."

 아, 스스로의 출구를 선택할 수도 없이,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허수의 시간에, 우리가 사는 우주에서 벗어나 아기 우주로 사라져버린 그 애. 그런 다음엔 또다른 블랙홀을 통해 우주로 방출돼버린 그 애, 여진!
 훗날 나는 스티븐 호킹의 불구를 두고 어떤 이가 하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는 세계를 창조한 신의 비밀에 너무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의 두려움을 사, 신이 그를 불구로 만들어버렸다"고 하는.
 나는 '불구'의 두려움을 안고 다시 '실제 시간'속으로 황망히 돌아오고 있었던가.
 여진, 그 애는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니라, 돌어올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근 한 달 동안의 떠돎에서 내가 얻은 결론은 그러했다. 그렇다, 나는 남들이 십 년이라고 느낄 수도 있는 한 달을, 단 하루라고 느끼면서 허수의 시간 속을 다녀왔다. 그런데 도대체 어느 세계가 우리가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 소란스런 세계인가. 여진이 가 있는 곳인가, 아니면 내가 돌아온 이곳인가. 하지만 어느 쪽이든 우리가 원해서 마음대로 넘나들 수 없는 것만은 분명했다. 마치 '너와 나'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나는 창틀에 목을 걸치고 대문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어둠을 목도하면서 지난 한 달의 시간들을 묵연히 되돌아보았다. 그 동안에 나는 우리 존재의 불가사의를 경험한 듯싶었다. 하나의 사랑과 하나의 슬픔을 가지고. 서로 알몸이 되어 부둥켜안고 뭐라 속삭이는 순간에도 우리를 구분 짓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뿐인가, 우리는 제각기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낯익은 타인들인 것이다.

<불귀>

 대학교 1학년 교양수업 때 처음으로 읽었던 윤대녕의 단편 <은어낚시통신>의 첫인상은 익숙한 낯설음이었다. 90년대의 새로운 문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기념비적인 단편만의 새로움이 기존의 한국소설과는 낯선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익숙함은 그때 한창 빠져있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과 겹치는 부분에서 느껴졌다. 당시의 어린 이성으로 섣불리 <은어낚시통신>에 '짝퉁 하루키'의 딱지를 붙이고는 저 멀리 치워버렸던 기억을 상기하며 6년 만에 단편집 [은어낚시통신]을 정독했다.
 역시, 스무 살짜리의 독서는 너무도 빈약하고 유치했다. <은어낚시통신>이외의 다른 단편들과 견주어 읽으면서 이제야 윤대녕의 진짜 문학적 주제를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단편들 중 <불귀>라는 작품이 인상깊어 마지막 부분을 되돌아가 읽어보았다. '다른 세계'라는 단어들, 은어, 회귀, 존재, 단편집 전체를 관통하는 '다른 세계'로의 회귀에의 갈망, 그리고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저쪽 세계로 넘어가는 데 실패한다. 깨닫고 그리워하고 원하고 애원할 뿐.
 우리 모두 어렴풋이 이 세계가 아닌 저 세계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곳으로 가길 원한다는 것도,
 동시에 이곳을 떠나길 원치 않는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