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독서/소설의 그림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명한 걸작, 죄와 벌

koala초코 2012. 4. 18. 23:48

 2003년도에 나온 새빨간 열린책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초기 판본 [죄와 벌]은, 아마 내 기억에 고 1때 독서경시대회 대상 도서라 산 것이었다. 길고 긴 러시아식 이름에 뭔 부칭에, 본명에, 애칭까지 복잡한 호칭 체계에 스토리를 따라잡기도 전에 지쳐버려 50쪽 정도를 겨우 읽고는 미련없이 포기한 추억은 덤이다. 하긴 그때 억지로 다 읽었다고 해도 열일곱의 나는 책을 반도 이해하지 못했겠지. 이번의 완독은 읽을 준비가 다 된 뒤였기에 끝마칠 수 있었던 것.

 이 유명한 고전 [죄와 벌]을 '한 가난한 대학생이 대학 등록금 때문에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자수하는 이야기'라고 일단 한 줄로 줄여보자. 현재 신문에 실려도 어색하지 않은 화젯거리다. 이런 흔하디 흔한 소재를 가져다 거장은 인간의 도덕과 윤리, 종교, 인간의 본성, 정신, 구원, 인간의 복잡한 심리 등의 인간사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사상의 도가니로 한솥 크게 끓여 일품 요리로 만들어냈다. 한 줄 더 책에 대한 소개말로 '잡지에 논문을 실을 정도로 명석하고, 처음 만난 술꾼 마르멜라도프를 거리낌없이 도와줄 정도로 사려깊은 대학생 라스꼴리니코프는 왜 살인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의문의 해결을 향해 나아가는 심리극'이라고 붙여 본다.

 여기서 거론되는 것들이 워낙 많아서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각각 한 편의 논문과 단편소설이 될 정도다. 이제 겨우 첫 독서를 마친 내 어설픈 눈에 들어오는 이야깃거리를 하나 찝어내보면 소설 중간에 소개되는 로쟈의 논문 내용,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 대한 사상을 되새겨본다.

 

377쪽, "저는 다만 <비범한>사람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즉 공식적인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양심상........모든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말한 것뿐입니다. 그것도 만일 그의 신념(때로는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적인 신념일 수도 있지요)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요구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말입니다. (....중략.....) 저는 제 주된 사상을 믿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 사상이란 바로 자연의 법칙상 사람들은 <대체로>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는 겁니다. 하나는 저급한(평범한) 부류로서 오로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출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말>을 할 줄 아는 재능 혹은 천분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 큰 분류 아래로 수많은 작은 부류들이 무한하게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두 부류를 구분 짓는 특징들은 대단히 명확합니다. 첫번째 부류, 즉 재료는 대체로 말해서 자기 천성상 보수적이고 체면을 차리는 사람들로 복종 속에서 살아가면서 순종하기를 좋아합니다. 제 생각에 그들은 반드시 복종을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고, 그렇게 하는 게 그들에게는 전혀 굴욕적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 모두는 그 능력에 따라서 법률을 어기는 파괴자들이거나 그럴 경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범죄는 물론 상대적이고 다양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다양한 분야에서 더 좋은 것의 이름으로 현재의 것을 파괴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사상을 위해 시체와 피를 건너뛰어야 한다면, 자기 내면의 양심에 따라서 피를 뛰어넘는 걸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사상과 그것의 중요도에 따라서 그렇다는 겁니다. 저는 제 논문에서 이런 의미에서만 범죄에 대한 그들의 권리가 유효하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중략......) 첫 번째 부류는 항상 현재의 사람들이고, 두 번째 부류는 미래의 사람들입니다. 전자는 세계를 보존하고 그 수를 늘립니다. 후자는 세계를 움직여서 그 목적으로 인도하지요."

 

 이 부분을 읽으며 문득 내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은, 지금 시대에 와서 영웅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비범한 자는 그의 억누를 수 없는 운명의 힘을 어디에 어떻게 펼쳐야 할까? 였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게오르그 루카치, 소설의 이론)' 그 행복의 시대 영웅들은 자신들이 밟아나갈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제는 스스로 길을 찾아나가야 하는 시대, 심지어는 직접 만들어나가야 하는 현대에 툭 떨구어진 비범한 자들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그 경계를 넘어보고자 로쟈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답안을 썼고 그 답에 대한 평가가 지금까지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의 인간에게 경계를 뛰어넘는 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지?

 쓰고 보니 본문의 내용과 조금 핀트가 어긋나는 것도 같지만, 뭐, 고전이란 연주자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는 하이퍼텍스트니까...거침없이 생각의 꼬리를 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