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독서/소설의 그림자

비행운과 비행운

koala초코 2012. 7. 28. 22:45

293쪽, 저는 지난 10년간 여섯 번의 이사를 하고, 열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명의 남자를 만났어요.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요. 이십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조하네요.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으니까 제가 겪은 모든 일을 거쳐갔겠죠? 어떤 건 극복도 했을까요? 때로는 추억이 되는 것도 있을까요?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는데. 다른 친구들은 무언가 됐거나 되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저 혼자만 이도 저도 아닌 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해져요. 아니, 어쩌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거보다 더 나쁜 것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요.

 

 유독 어둡고 끈적하고 우울한 이번 김애란의 소설집에서도 가장 슬프고 애처러운 마지막 단편 <서른>은 20대였던 나와 20대인 나와 30대가 될 나를 울게 한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어둑한 술집에 죽치고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지적이고 허세 어린 농담을 주고받다 봄 세상이 조금 만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어느 날 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시시한 인간이 돼 있던 거다.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이 이상이 될 수 없을 거란 불안을 안고(<호텔 니약 따>). 어른이란 게 이리도 시시하고 재미없는 존재였어? 난 앞으로의 어른으로서의 삶이 지루하리란 예감에 견딜 수가 없어. 이런 쓸쓸함이 싫다. 좋은 소설을 읽은 뒤에 느껴지는 씁쓸한 뒷맛은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