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독서/한 권의 책

윌 듀랜트의 철학 이야기

koala초코 2012. 9. 5. 17:04


 

 

철학 이야기 - 8점
윌 듀란트 지음, 황문수 옮김/문예출판사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나요? 진리를 알기 위해? 잘난척하기 위해? 삶을 위해, 라고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답이 나온다. 15명의 철학자들의 생애와 저작들을 샅샅이 분석해 저자가 이끌어낸 철학의 존재 이유는 찬란하다. 진리는 우리를 부자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자유인이 되게 한다(12쪽). 자유인이라! 이 개념을 여러 의미로 풀이할 수 있겠지만, 나 나름대로는 '자기 자신을 자각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알며 내가 나아갈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이라 풀어 써 보겠다. 한 마디로, '지혜로운 사람'. 이 책은 그런 지혜로운 사람들의 행적을 윌 듀랜트의 친절한 해설과 아름다운 문체와 함께 뒤따라가는 하나의 통로다. 

 세 달 동안 책을 읽으며 철학자들의 사상을 본체로 해서 수많은 생각들을 이어 갔다. '철학은 수줍은 노처녀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문제와 관념에 집착하고 있다(566쪽)'같은 비유와 상징이 가득한 문학적인 문장들에 놀라 감탄하기도 했다. 훌륭한 내용과 좋은 문장으로 쓰여진 책을 읽는 경험이란, 최고급 식당에서 최상의 요리들을 맛볼 때의 환희를 느끼게 한다. 오랜만에, 독서했다!



107쪽, 그러나 외부적인 재산이나 관계가 행복에 필요하다 하더라도 행복의 본질은 우리들의 내면, 곧 원숙한 지식과 맑은 영혼에 있다. 분명히 감각적 쾌락은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 이 길은 순환도로여서, 소크라테스가 노골적인 쾌락주의적 사상을 비판한 바와 같이, 긁으면 가려워지고 가려우면 긁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 출세도 행복에 이르는 길은 아니다. 정계에서는 우리는 민중의 변덕에 끌려다녀야 하고, 민중은 가장 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 행복은 정신적 쾌락이어야 한다. 그리고 행복을 진리의 추구 또는 획득으로부터 얻을 때에만 우리는 이 행복을 믿을 수 있다. "이성의 움직임은.....그 자체 이상의 목적을 갖지 않고 이성을 자극해서 그 움직임을 촉진하는 쾌락도 그 자체 안에 있다. 또한 자기 만족, 지치지 않는 것, 휴식 능력 등도....분명히 이성의 활동에 속해 있으므로 이 활동 안에 반드시 완전한 행복이 있을 것이다"(윤리학).


109쪽, 급진주의는 안정기의 사치품이다. 사물을 손 안에 꽉 쥐고 있을 때에만 사물을 변경시킬 수 있다.


121쪽, 그리스 정신은 단련을 받지 못했고, 과도를 방지하고 견실하게 하는 전통이 없었다. 그리스 정신은 지도에도 없는 들판에 마음대로 뛰어들어 너무 쉽게 이론과 결론을 찾아낸다. 그러므로 그리스 과학이 뒤에 처져 절름거리는 동안에 그리스 철학은 두번 다시 도달할 수 없는 높이로 뛰어올랐다. 현대의 위험은 정반대 쪽에 있다. 귀납적 자료가 베수비오 화산의 용암처럼 사면 팔방에서 쏟아져 내리기 때문에 우리는 정리되지 못한 사실에 눌려 질식하고 있다. 종합적 사고와 통일적 철학이 없는 까닭으로 우리의 정신은 항상 새로워지고 다양해져서 전문적 혼란을 일으키는 과학에 압도당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의 가능성의 한갓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137쪽, 정치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전부 내맡겨서는 안 된다. 항상 자기 자신을 줘야 하지만 한꺼번에 전부 내주지는 말아야 한다. 기대할 바가 남아 있어야 온정을 베푸는 법이다.


141쪽, 유명한 구절로는 "맛만 볼 책도 있고 삼켜야 할 책도 있으나 잘 씹어서 소화해야 할 책은 적다"는 말이 있다. 물론 이러한 책들은 세계가 매일매일 목욕하고 중독되고 익사하는 잉크의 대해와 홍수의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히 [수상록]은 잘 씹어서 소화할 만한 가치가 있는 소수의 책에 속한다. 이렇게 많은 고기가 이렇게 훌륭하게 요리되어 이렇게 작은 접시에 담겨 있는 일은 드물 것이다.


155쪽, 과학과 마찬가지로 정치도 철학의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다. 철학과 과학의 관계는 정치와 정책의 관계와 같다. 다시 말하면 목표 없는 개별적 연구에 대해 포괄적 지식과 전망에 의해 인도되는 움직임이 철학이다. 지식의 추구가 인간과 생활의 현실적 요구로부터 절연될 때 스콜라 철학이 되는 것처럼, 정책 수행도 과학과 철학으로부터 유리될 때 파괴적인 난동이 된다.


197쪽, 원래 질서는 우리의 정신적 경향에는 맞지 않는다. 우리는 환상의 미로를 따라가기를 좋아하며, 우리의 꿈으로부터 마음대로 철학을 엮어내려고 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는 오직 하나의 불가항력의 소망-세계의 참을 수 없는 혼돈을 통일과 질서로 바꾸려는 소망-이 있었다. 스피노자의 경우, 아름다움에 대한 남방적 열망보다는 진리에 대한 북방적 갈망이 강렬했다. 그의 예술가적 기질은 순전한 건축가적인 것이어서 사상의 체계를 세워 균형과 형식을 완성했을 뿐이었다.


301쪽, 감각은 무질서한 자극, 지각은 질서정연한 감각, 개념은 질서정연한 지각, 학문은 질서정연한 인식, 지혜는 질서정연한 생활이다. 뒤의 것이 각기 질서, 관련, 통일의 정도에 있어서 더 크다. 이러한 질서, 이러한 관련, 이러한 통일은 어디서 생기는가?사물 자체로부터는 아니다. 사물은 무수한 채널을 통해 한꺼번에 잡다하게 몰려드는 감각에 의해서만 우리들에게 알려지기 때문이다. 이 귀찮은 무법자들에게 질서와 관련과 통일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들의 목적이며, 이 바다에 불을 밝히는 것은 우리들 자신, 우리들의 인격과 우리들의 오성이다. 로크가 "먼저 감각에 없었던 것은 오성에도 없다"고 말한 것은 잘못이었다. 그리고 라이프니츠가 "단 오성 자체를 제외하고는"이라고 덧붙인 것은 옳았다. "개념 없는 지각은 맹목이다"(순수이성비판)라고 칸트는 말한다. 지각이 저절로 모여서 자동적으로 질서정연한 사상이 된다면, 오성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능동적 활동이 아니라면, 어떻게 동일한 경험이 어떤 사람에게서는 평범한 것으로 그치고, 보다 활동적이고 쉬지 않는 인물에게서는 지혜의 빛, 진리의 아름다운 논리로 고양될 수 있는가?

 따라서 세계는 저절로 질서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사고 자체가 정제 작용이기 때문에 질서를 갖게 된다. 사고는 마침내 과학과 철학이 되는 경험 분류의 제1단계이다.


366쪽, 우리는 인생의 목적과 이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을 획득하는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떠한 인간인가 하는 것이 무엇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더 행복에 기여한다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신적 수양보다는 부의 획득에 몇천 배의 힘을 기울인다"(여록과 보유-인생의 지혜). "정신적 욕구를 갖지 못한 자를 속물이라고 부른다"(여록과 보유-인생의 지혜). 속물은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한가할 때 마음이 편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는 게걸스럽게 여기저기로 새로운 감각을 찾아다니다가, 게으른 부자나 무분별한 탕아가 받는 천벌-권태-에 정복당한다.


383쪽, 원숙한 사람은 칼라일처럼 태양이 담뱃불을 붙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태양을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태양의 도움을 받을 만큼 현명하다면 태양도 담뱃불을 붙여줄 것이다. 이 광대하고 중립적인 우주도, 만일 우리가 우주의 활동을 돕기 위해 우리의 힘을 보탠다면 매우 유쾌한 장소가 될 수 있다. 사실상 세계는 우리의 친구도 적도 아니다. 세계는 우리들의 손 안에 있는 단순한 원료이고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된다.


488쪽, 자유의지는 의식의 필연적 결과이다. 곧 우리들이 자유롭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535쪽, 공포에는 상상력이 덧붙여진다. 인간은 뿌리 깊은 물활론자로서 만물을 의인화해서 해석한다. 인간은 자연을 인격화하고 극화하고 자연을 무수한 신성으로 가득 채운다. "무지개는....아름답고 신출귀몰하는 여신이 하늘에 남겨 놓은 발자국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 대단한 신화를 글자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화에 담긴 시는 사람들이 산문적 생활을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된다.



덧, [철학 이야기]는 현재 두 가지 번역본이 있다. 나는 문예출판사본 번역자가 철학 전공자여서 이걸로 읽었는데, 비평들을 보니 동서문화사 임헌영 번역본이 문장이 매끄럽고 잘 읽힌다고 한다. 이 판본도 구입해서 비교해가며 다시 한 번 더 읽어야 겠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