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권리/2013_여름 내일로

[0730 내일로 첫날-안동] 혼자 어떻게 여행을 가요?

koala초코 2013. 8. 6. 21:59



(분당선을 타고 청량리역으로)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여덟 시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집을 나와야 했습니다. 

어깨엔 무거운 가방, 

눈에는 몽롱한 잠기운, 

평소 거의 접하지 못하는 새벽 공기의 맛에 진짜 내가 내일로를 가는 건가....하며 

꿈을 꾸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것도 혼자. 


충동적으로 티켓을 구입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하루 만에 짐을 싸더니 홀랑 기차를 타러 떠난다는 내 모습에 부모님은 놀라고 친구들은 믿지 않고 인터넷에서는 그래도 혼자 다니는 거 해 볼 만 하다며 하지만 심심하다며 위로인지 충고인지를 남겨 줍니다.


혼자 어떻게 여행을 가! 식당에서 주문도 못 하던 애가

불안해 하는 나를 여행에 들뜬 내가 살살 달랩니다.


일단 기차부터 타고 우리(?) 대화하자~

첫 날부터 자아분열이 오려 합니다.



(오피스텔 5층에 있는 안동 게스트하우스 고타야)


혼자 여행을 떠날 결심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 요소가 게스트하우스.

제주도에서 여행자에게 최적화된 게스트하우스의 매력에 푹 빠져버려

이번 내일로 숙소는 죄다 게스트하우스로 촥촥 예약해 놓았습니다.

심지어 여행 경로를 가 보고 싶은 게스트하우스에 맞춰 짠ㅋㅋㅋㅋ

어찌 보면 이번 내일로 부제목은 '한국의 게스트하우스 투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약 네 시간을 달려 안동에 도착

안동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고타야에 짐을 두고 나옵니다.

체크인 시간에 상관없이 무거운 짐을 맡길 수 있다는 것도 게하의 장점 중 하나!



자체제작한 지도를 나눠주신 덕분에 안동 투어가 한결 편해졌습니다.

벌써 점심시간, 일단 고대하던 빵집부터 가 보기로 합니다.



(쉽게 찾아갈 수 있었던 맘모스 빵집)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고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외면하지 못하듯

피와 살이 밀가루로 이뤄진 빵순이가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밥도 먹기 전 안동에서 유명하다는 맘모스 빵집부터 찾아 들어갑니다.

내부 사진도 찍으려 했으나 사람이 드글드글해 패스

어떤 빵을 골라야 하나 고뇌에 차 매장을 열 바퀴쯤 뱅뱅 돌다

No.1과 2가 붙어 있는 블루베리 파이와 크림치즈빵 하나씩 골라 계산하고 나옵니다.



그리고 안동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간고등어 정식으로 점심

고타야 지도를 보고 맛집으로 표시된 식당으로 찾아 들어가 일인분을 주문합니다.

평소엔 고등어 입에도 안 대던 애가 뼈다구만 남기고 밥을 싹 비워 없앴습니다.



(하회마을의 유교문화길)


안동역에서 하회마을까지는 버스를 타고 40분이 걸립니다.

안동에는 두 번째 방문인데, 

이번에 혼자 안동을 와 보니 경로 짜기가 상당히 까다로웠습니다.

대부분의 관광지가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거리...버스로 다니기 힘든 도시입니다.

차도 없는 가난한 여행자는 그저 울면서 

하회마을과 월영교 딱 두 군데만 찍어두고 가기로 했습니다.


난 한 놈만 패



(더위에 지친 나를 달래 준 블루베리 파이 뫄이쪙)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덥습니다.

티켓을 끊고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셔틀버스를 탑니다. 더워요.

하회마을로 들어갑니다, 덥네

더워, 너무 더웟 

다급히 하회마을과 낙동강 사이 유교문화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늘 덕에 한결 시원해 집니다. 

용기내어 마을로 들어섭니다. 덥습니다. 

골목마다 여름 정오의 더위가 숨어 있다 튀어나와서는 내 발을 잡아당깁니다.


새삼 깨닫습니다. 왜 여름엔 산이나 바다로 휴가를 떠나는지를ㅠㅠ

새삼 알게 됩니다. 이런 더위에 갓 쓰고 한복 칭칭 감고 어흠거리며 점잖게 하회마을을 걸어다닐 선조들의 위대함을. 선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기암절벽이 장관인 부용대)


머리 끝까지 차오른 더위에 낙동강으로 뛰어들 지경이 된 나

나루터를 발견하고는 배를 타고 강 건너 부용대까지 가 보기로 합니다.

3000원이면 왕복으로 낙동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헤헤)


부용대 꼭대기까지는 10분, 금방 올라가니 하회마을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2008년엔가 하회마을에 왔을 때는 배가 없어 오지 못했던 부용대

과연 위에서 내려다보는 하회마을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공연? 때문에 공사하는 현장이 좀 거슬리긴 했지만...

그런데 그때보다 낙동강 물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합니다. 4대 강 사업 때문인가?





(길, 길, 길)


이번 여행의 주요 테마 중 하나가 길입니다.

저는 걷는 것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었습니다.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문제였지만...(?)


나란 여자 모순적인 여자 ㅋㅋ


울창한 나무 사이 쭉 뻗은 매끈한 유교문화길

굽이굽이 기와 담장 사이로 흘러들어가는 하회마을의 길

저녁 때가 되고 절정으로 오르던 더위가 한 김 가시고 나니 걷기 편해져 이리저리 마을을 쏘다녀봅니다.



안동 하면 하회마을, 하회마을 하면 하회탈,

안동은 하회별신굿탈놀이로도 유명하지요

마을의 안녕과 풍작을 기원하며 양반들을 희화화하고 풍자하는 내용이 담긴 탈놀이는

사실 양반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평소 지배층에 쌓인 불만을 탈놀이를 통해 해소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줌으로써

더 큰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양반의 마을인 하회마을에 탈놀이가 유명한 것입니다.



운 좋게 마을 안까지 들어오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미숫가루 한 잔

그리고 운 나쁘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쏟아지는 비ㅠㅠ

다시 운 좋게 게스트하우스에서 월영교 야경 투어를 운영하는 사실을 알고

(월영교로 가는 버스가 비교적 빨리 끊겨요..여긴 야경이 유명한데;)

투어가 출발하는 여덟 시까지 빈둥거리며 기다립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목조 다리인 월영교는 옆에 안동댐을 끼고 선 다리입니다.



야경이 유명합니다.






(귀신 나올 거 같아.........)


야경이 유명한데, 저녁에 비도 내리고, 강에 물안개가 짙어지면서

다리를 건너는데 마치 다른 세계로 떠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이렇게 저 쪽으로(?) 넘어가는 거구나...하는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ㅋㅋ

다리 한 번 건너고 어떻게든 흔들리지 않으러 용을 쓰며 야경 사진을 찍습니다


카메라 산지 5년이 넘었는데 여직껏 야경 하나 제대로 못 찍는 멍청이가 접니다



(이런 셀카나 찍고 말이죠)


메트릭스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사진입니다.

이게 이 날 월영교의 분위기였습니다.



(볼만했던 야경)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오늘 두 시간 자고 더위 속을 헤맨 탓에 지친 저는

뒤풀이고 뭐고 도미토리 2층 침대 눕자마자 잠이 듭니다.

아직 혼자 다니는 여행길이 어색하고 부끄럽기만 해

사람들에게 말도 걸고 이야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ㅋㅋ) 해야 하는데

수줍수줍열매만 먹다가 목이 막여 묵언 수행 중....


잠결에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봐봐, 이런 식으로 혼자 어떻게 여행을 다닐 거야?

너무 피곤해 제대로 대꾸하지 못한 나는 일단은 불안을 잠재우기보다 그대로 안고 가기로 합니다.


과연 이번 내일로,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