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권리/2013_여름 내일로

[0731 내일로2-경주] 자전거는 여행의 왼쪽 날개

koala초코 2013. 8. 8. 23:38



(경주 가기 전 이른 아침에 둘러본 신세동 벽화마을)


우루사 열 마리쯤 머리에 얹고 일찍 잠든 덕에 상쾌히 일어난 지금 시간은 아침 7시!

하지만 안동에서 경주 가는 기차는 11시 47분과 5시 것밖에 없는 상태ㅠㅠ

안동의 다른 여행 코스는 1시간 거리라 애매해져 가장 가까운 신세동 벽화마을에 가 보기로 합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직접 제작한 벽화마을 지도를 보며 한 바퀴 둘러본 벽화마을은 아기자기하고 예뻤습니다.

저기 배달하는 아저씨 그려진 벽화 앞을 지나가는데 어떤 아주머니 두 분이서 

"여기 지나가는 사람들 다 이거 찍더라!"

하며 웃으시면서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달동네의 좁고 꼬불꼬불한 길에 숨겨진 벽화 찾기가 쏠쏠해 신나서 사진을 찍다가

문득 내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람 둘 지나가기도 힘든 좁은 골목에서 벽화 너머로 들리는 티비 소리, 밥 먹는 소리, 아이 혼내는 소리

적나라하게 들려오는 생활의 소리에 갑자기, 여기 사람들은 벽화 보러 오는 관광객들을 과연 반가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좋은 의도와 진취적인 의미를 가지는 달동네 벽화들이지만,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로 인한 문제들도 분명 존재하리라는 생각에 복잡한 심경이....(1박 2일에서 방송 탄 혜화동 날개 벽화를 원작자가 지운 사례가 있죠)



(경주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자전거 여행용 지도와 8000원 주고 빌린 자전거 푸린)


여러모로 심란한 상태에서 도착한 경주, 도착하자마자 일단 역 앞의 관광안내소에서 지도와 스탬프 투어 책자 받고

그 옆의 자전거 대여점에서 밤 8시까지 자전거 한 대를 빌립니다.

안동도 자전거를 빌릴 수는 있었는데 가 볼 만한 곳이 죄다 한 시간 거리여!ㅋㅋ이게 여행이여 운동이여!!!ㅋㅋㅋㅋ

다행히 경주는 불국사와 석굴암만 깨끗이 포기하면 대부분의 유적지는 충분히 돌아볼 만한 거리에 모여 있습니다

혹시 작은 자전거(다리가 닿지 않는 키 150은 웁니다....)있냐는 물음에 냉큼 꺼내주신 핑크색 자전거

푸린이라 이름을 붙여주고 지도에 의지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노란색이면 피카츄, 빨간색이면 파이리, 파란색이면 꼬부기라 이름 붙이려 했어 ㅋㅋㅋㅋㅋㅋ



(경주역사유적지구)


무작정 달린 나는 일단 첨성대와 대오릉을 보기 위해 페달을 힘차게 밟았습니다

경주는 큰 언덕이 없고 자전거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달리기가 편했습니다

문제는 자전거에 서툰 내가 불편했다는 거...앞에 사람이 있을 때마다 섰다가,,,다시 달리다...또 섰다....

작년에서야 자전거 타기를 배운 숨쉬기 운동 전문가에게 

도심에서의 자전거 라이딩은 아직 무섭습니다



(볼 때마다 묘한 첨성대)


여러 릉과 첨성대,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 장소인 계림, 월성 터, 석빙고 등이 모여있는 경주역사지구

길이 널찍하고 평탄해 자전거 타기 그만입니다

평지라 눈에 금방 들어오는 첨성대로 다가가 제일 먼저 스템프를 찍었습니다.

500원 내고 입장할 수 있는데 사진에서처럼 담장이 아주 낮아 밖에서 관람해도 상관은 없긴 하...지만

가능하면 돈을 내고 관람합시다 ㅎㅎㅎ

저는 예전에 두 번이나 왔었으니 패쓰~



달리다보니 코스모스 가득한 꽃밭이 나와서 깜짝....가을에 피는 꽃 아니니 너희들?



눈 두는 곳마다 보이는 거대한 무덤들



석빙고는 언덕에 있어 갈까말까........고민하다 한 번 가 보자 해서 패기있게 언덕에서 페달 밟고

재빨리 안장에서 내려와 걸어올라갔습니다 ㅋㅋㅋ

입구에 서니 확실히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습니다



(동양 최고의 구층 목탑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황룡사지 터)


여기서부터 지도를 봐도 길을 헤매기 시작하느라

황룡사지 가는 길은 다소 힘겨웠습니다.

이때부터 유적지 관광보다는 자전거 타기 자체에 정신이 팔려 

그저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ㅋㅋㅋㅋ



황룡사지 근처에 있는 분황사에서 표 끊고 들어가서는

캔 커피 한 잔 하며 한숨 돌렸습니다.

원효대사 등 신라 시대 유명한 대승들이 거쳐간 분황사의 모전 석탑은

보통의 절에서 보기 어려운 특이한 탑입니다.

이웃한 황룡사와 함께 신라의 대표 사찰이었다고 하죠.


경주의 유명한 다보탑과 석가탑이 우아하다면

이 분황사 모전석탑은 뭔가 푸근한 이미지입니다.



(황남빵 원조 가게에서 십 분을 기다려 받은 황남빵 !!!!!!!!!)


점심도 안 먹고 미친듯이 자전거를 타느라 배가 고파진 나는

경주 하면 황남빵, 황남빵 하면 경주, 빵 하면 나

황남빵 원조 가게를 찾아 나섭니다

갓 나온 황남빵은 처음 먹어보는데 하....진짜.............속 가득한 팥이.........

빵 좋아하고 팥 좋아하는 제게 팥 가득한 빵이 주는 맛은 맛스타 처음 먹어본 아기병사가 느낀 바로 그 맛!!!!!!

그자리에서 다섯 개를 촵촵 먹어치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산책하기 딱 좋은 대릉원 전경)


황남빵 가게 바로 앞이 대릉원이어서 다시 나선 길

의외로 공원 길이 널찍하고 나무도 많아 걷기가 상쾌했습니다.

천마총 가서 천마도도 보고~금관도 보고~무덤 사이 길도 거닐고~혼자 사진도 찍고~

단체 관광객 무리 사이로 빠져나가는데 유적 해설하시는 분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신라인들은 여기 무덤 바로 옆에도 집을 짓고 살아왔어요. 죽음을 삶의 일부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지금에서야 죽음과 거리가 멀어졌지만..."


이 얘기를 들으며 문득 사회 시간에 배웠던 님비 현상이 생각나더군요(님비현상 맞나?ㅋㅋ) 화장터나 공동묘지 유치에 결사반대하는 주민들, 우리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 하고, 무서워 하고, 그래서 귀신 영화나 이야기가 유행하고. 귀신 이야기 자체는 좋은데 귀신이라는 소재를 '공포'라는 감정과 결부시켜 다루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좀 더 깊이 파고들어 볼 만한 문젯거리입니다.


길이 좋으니 걸으며 여러 생각이 많이 떠오르네요



(대릉원보다 더 크고, 한적한 오릉)


내친김에 오릉까지 가 보자 다시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오릉과 포석정은 경주 시내와 거리가 더 멀어 걷기엔 힘들고 버스로도 가기 애매한 거리

하지만 내겐 밟기만 하면 거침없이 나아가는 푸린이가 있지!

신명나게 달려 오릉으로 갑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및 그의 부인 알영과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등 초대 신라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오릉은

애매한 거리 덕에 찾는 사람이 정말 없었습니다 



사람도 없고 한적하니 박혁거세 앞에서 점! 프 !!

벤치에 카메라 놓고 타이머 맞춰 세 번의 시도 끝에 얻어낸 사진 ㅋㅋㅋㅋ


시간은 벌써 7시가 다 되어가고

자전거 반납 기한이 다가와 오늘의 마지막 코스, 안압지로 갑니다



(2008년 가족여행 때 디카로 찍은 안압지의 야경)


이곳은 야경이 정말 유명하고

7시 넘어서 입장하니 다들 야경 찍으러 삼각대에 대포렌즈에 잔뜩 준비하신 분들로 바글바글하더군요

안압지 야경,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 번 찍어 보....고 싶었지만 자전거 반납 시간 때문에ㅠ

불 들어오는 것만 보고 가자 결심하고 입장했습니다.



(연못이 커서 밝은 날에도 보기 좋은 안압지)


안압지의 원래 이름은 동궁과 월지, 사신이 오거나 나라에 중요한 손님이 오면 축하연을 연 장소로

안압지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 폐허가 된 이 곳에 새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이 큰 연못에 배 띄우고 잔치 열면 어떤 사신이 와도 신라에 마음을 다 내어줄 것만 같군요 ㅋㅋ

그만큼 아름다운 안압...아니 동궁과 월지 



해가 지고 불 들어오는 것까지 보고서는

시내로 다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이런........8시가 넘으니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았습니다ㅠㅠ

결국 이날은 황남빵 여섯 개 먹고 끝..........의도치않게 다이어트 여행이 되고 맒ㅠㅠㅠㅠ


나중에 숙소에서 같은 방 쓰는 다른 내일러들과 이야기하는데

다들 안압지 야경 보고 돌아오니 식당이 다 닫아 멘붕이었다며ㅋㅋ

사실 경주엔 유명한 맛집도 없고 아는 음식이라곤 황남빵..뿐이라 

식도락 여행엔 적절치 않은 도시입니다. 흙흙



게스트하우스 로비에서 맥주 한 잔 하며 일기 정리!

오늘 찍은 스탬프들 보니 뿌듯뿌듯

이 모든 공로를 오늘 나와 함께한 푸린이에게 바칩니다(짝짝짝)



(서툰 주인만나 고생한 푸린이...의외로 속도가 잘 나서 기분 짱짱이었어^3^)


왜 자전거 여행을 그리 많이들 떠나는지 깨닫게 된 오늘

걷는 여행도 매력 있고 기차 여행 버스 여행 모두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내가 지금 있는 이 곳의 공기를 호흡하고 바람을 느끼며 달릴 수 있는 자전거로 할 수 있는 여행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겨 줍니다.


'여행'에 날개가 있다면 왼쪽 날개는 자전거가 되겠어요.

오른쪽 날개는 기차. 여행! 하면 기차! 하면 설레는 그 마음, 기차만이 주는 두근거림이 있잖아요.

그럼 자동차는? 사실 자동차로 떠나는 여행은 가장 편하지만 여행..이라기보다 관광에 가까운 교통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볼 곳만 쏙쏙 보고 빠지는 자동차 여행은 여행의 결과만 있지 과정이 없잖아요.

그럼 비행기는? 배는? ........이것도 나중에 생각해 볼 문제로 빼두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내일로 2일차는 기분 좋게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