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독서/소설의 그림자

사랑은 여름, 사랑은 거짓말

koala초코 2014. 1. 2. 22:59



사랑을 비유하는 말은 봄날 떠다니는 꽃씨만큼이나 무한하다. 

이 소설집에 기대어 정의해 보자면, 사랑은 여름이다. 여름 공기 터질것만 같은 생명력, 생명이 뿜어내는 열기, 사랑은 여름의 온도와 같다. 답답하다. 숨 쉬기 힘들다. 하지만 여름이 싫다고 여름을 건너뛸 수 없다. 우리는 외친다. 여름이 좋아! 거짓말이다. 여름을 견디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


<성수기가 끝나고> 부자 여자친구를 만난 리처드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

<바덴바덴에서 보낸 밤> 관계를 지키기 위한 거짓말은 끝내 '그녀를 이미 잃'(108p)게 한다.

<숲 속의 집> 은 읽는 내내 한숨이 나왔다. 자신의 이상적인 사랑, 그 사랑이 이룩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 남자가 소름끼치면서 애처롭고 잔인하고 무섭고 또 이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밤의 이방인> 우연히 마주친 타인의 이야기를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가?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자신의 인생사를 이야기할 때, 그건 진실일까 거짓일까 진실을 가장한 거짓일까 거짓을 가장한 진실일까.

<마지막 여름> 숲 속의 집과 비슷한 맥락으로 완벽한 가정 속에서 완벽한 죽음을 맞기 위해 거짓말하는 주인공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뤼겐 섬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우리는 가족에게 진실만을 이야기하나?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는 존재가 가족이 아닐까? 이야기 끝에서 화자인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함과 동시에 서글퍼하는 엔딩은 '전체적인 모호한 결론 속에 깃들인 작은 해피엔딩'(279p)이다.

<남국 여행>'그녀가 자식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그날은 다른 날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매력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마지막 단편 속 주인공은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딸과 아들과 며느리들과 손자들에게 난 너희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라고 선언할 수는 없지 않는가.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315p)니까. 젊었을 때의 그녀는 열정으로서의 사랑과 의무로서의 사랑 사이에 선택을 해야 했다. 그때 포기했던 열정의 대상을 우연히 재회하게 되면서 그녀는 자신이 버림받았었다고, 그래서 의무를 선택했었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했다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전체적으로 단편집의 주인공들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새로운 사랑, 익숙한 사랑, 익숙한 사랑이 법적으로 승인받은 가정,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 사랑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얇은 와인 잔 보다도 연약한 존재가 사랑이다. 거짓말로 유지될 정도로. 사랑의 연약함을 우리는 견디지 못한다. 조금의 부주의에도 깨져 버리는 사랑의 진실을 우리는 애써 감추고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라캉은 말했다. 진리는 오인을 통해 드러난다고. 사랑의 진실을 피하기 위해 거짓의 길로 들어서는 우리는 바로 그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바덴바덴에서 보낸 밤>을 보라. 그녀를 잃지 않기 위한 거짓말이 끝내 그녀를 잃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가. 수많은 사랑의 이야기들을 정리한다면, 사랑은 거짓말로 이루어진다는 공식이 나오리란 성급한 생각. 여기서 거짓말에는 오해, 오인, 은폐 등의 개념을 포괄하는 단어. 유명한 제인 오스틴의 연애소설 [오만과 편견]의 사랑은 오인으로 성립된 감정이 아니었던가.

다시 정의하자. 사랑은 거짓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