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독서/소설의 그림자

다시 찾은 민음사판 토마스 만 단편집

koala초코 2011. 3. 14. 14:14

 201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공지영의 <맨발로 글목을 돌다>에서 언급되길래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다시 읽으니 새삼 새롭게 다가오는 놀라움과 기쁨...

p55 리자베타, 나는 결론을 내릴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내 말을 들어주십시오.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이것은 일종의 고백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여주시고 간직해 주십시오. 나는 아직 아무한테도 이 고백을 하지 않았거든요. 사람들은 내가 삶을 미워하거나 두려워한다, 또는 경멸하거나 혐오한다고 말을 하기도 했고, 글로 써서 활자화한 적도 있지요. 나는 그런 말을 즐겨 들었으며, 그런 말이 내 귀에 솔깃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의 부당성이 감소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미소를 띠고 계시는군요, 리자베타, 나는 그 미소의 이유를 압니다. 그러나 제발 부탁입니다만,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을 문학이라고 간주하지 말아주십시오. 체사레 보르지아나 그를 추앙하는 그 어떤 도취적 철학을 생각하지는 말아주십시오. 그는, 저 체사레 보르지아는,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나는 그를 조금도 중히 여기지 않으며, 그런 비정상적 마성이 어떻게 이상으로서 추앙받을 수 있는지 결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은 정신과 예술의 영원한 대립 개념으로서 우리들과 같은 비정상적인 인간들에게는 피비린내 나는 위대성과 거친 아름다움의 환상으로 나타나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적이고 단정하고 사랑스러운 것이야말로 우리들이 동경하는 나라이며, 그것이 바로 유혹적인 진부성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삶인 것입니다! 친애하는 리자베타, 세련되고 상궤를 벗어난 것, 악마적인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그것에 깊이 열중하는 자는 아직 예술가라 할 수 없습니다. 악의 없고 단순하며 생동하는 것에 대한 동경을 모르는 자, 약간의 우정, 헌신, 친밀감, 그리고 인간적인 행복에 대한 동경을 모르는 자는 아직 예술가가 아닙니다. 평범성이 주는 온갖 열락을 향한 은밀하고 애타는 동경을 알아야 한단 말입니다, 리자베타!

<토니오 크뢰거>

346p 모든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진지하게 어떤 견해를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아주 절실하게 자기 자신의 일에 여념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네가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내보일 자신이 있는 만큼의 존경을 소극적으로 인정할 태세가 돼 있다.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멋대로, 대담한 확신을 보이되 그러나 어떤 고약한 양심의 가책도 보이지 마라. 어느 누구도 너를 경멸할 만큼 충분히 도덕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식으로 살면, 즉 네 자신과의 일치를 잃고 스스로에 대한 호감을 상실해서 네가 스스로를 경멸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러면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네 견해에 찬동해 올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난 졌다.......

<어릿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