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독서/소설의 그림자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

koala초코 2011. 5. 8. 14:23
 폴 오스터의 소설은 읽을 때 거침없이 잘 읽히고 내용도 마음에 쏙 들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그런데 다 읽고나면 알쏭달쏭 뭐가 뭔지 모르겠다. 뚜렷한 이미지가 남기보다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비스럽고 강한 무언가가 남는 간질간질한 느낌?
 동트기 직전의 기묘한 어둠과 빛 그 짧은 순간의 이상한 기분?
 이번 소설의 제목 '보이지 않는'이 폴 오스터의 문학을 설명하는 하나의 단어가 아닐지ㅎㅎ

p95 공포란 좋은 것일세. 공포는 우리로 하여금 모험을 감행하게 하고 또 우리가 머무는 통상적 범위를 초월하게 해준다네. 안전한 땅 위에 서 있다고 느끼는 작가는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지 못하는 법이지. 자네는 글쓰기의 장벽을 말했는데, 누구나 그런 장벽에 부닥치지. 대체로 글이 잘 안 나가는 것은 작가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야.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자신의 주제에 대하여 엉뚱한 접근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지. 그러면서 나는 예전에 어떤 작품을 쓰다가 내가 겪은 난관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 작품은 2부로 나누어진 일종의 회고록 같은 것이었다. 그 회고록의 1부는 1인칭으로 썼다. 나의 얘기가 1부보다 더 많이 나오는 2부 역시 1인칭으로 써나갔으나 점점 더 결과물에 불만이 쌓여 가다가 마침내 글을 멈추게 되었다. 그 중단 기간은 여러 달 계속되었는데 힘들고 번뇌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해결안이 떠올랐다. 나는 나의 접근 방법이 틀렸음을 알았다. 나 자신을 1인칭으로 서술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질식시켰고 <보이지 않는>존재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내가 찾고 있던 것을 찾는 게 불가능해졌다.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트릴 필요가 있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 자신과 나의 주제(바로 나 자신)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2부의 시작으로 다시 돌아가 3인칭으로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되었고 이런 자그마한 시점 변화에 따른 거리 덕분에 나는 그 책을 끝낼 수가 있었다. 어쩌면 자네도 이와 유사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말했다. 자네가 주제에 너무 가까이 있는 게 아닐까. 그 소재가 너무 고민스럽고 또 너무 개인적인 것이어서 1인칭 시점으로는 적절한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새로운 접근 방법이 자네를 격려하여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