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독서/소설의 그림자
에릭 오르세나의 두 해 여름
koala초코
2008. 12. 30. 11:59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다음 두 개의 글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하나는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 이세욱에 대한 기사, 그리고 하나는 역시 유명한 번역가 정영목 인터뷰 기사.
http://blog.aladdin.co.kr/mramor/2471408 정영목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6061719015&code=900308
이세욱
이들 말고도 한국의 유명한 번역가 이름을 대라면 일본문학에서 양억관, 김난주, 프랑스 문학에서 김화영, 영미 문학에서 김석희 등을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사람들은 번역가를 따져가며 까다롭게 책을 읽진 않는다. (그보다는 책을 아예 안 읽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그러나 조금이라도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번역의 질이 가독성이나 원저의 의미 전달 등 독서에서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세상에 좋은 글이 있고 나쁜 글이 있으면 번역에도 좋고 나쁨이 나눠진다는 사실! 하긴,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 어찌 쉽기만 할까.
따지고 보면 번역이란 외과 수술에 비할 수 있을 만큼 고통스러운 직업이다. 번역가는 문장을 가르고 의미를 잘라 내고 언어유희를 이식하며, 큰 것을 잘게 부수고 끊어진 것을 동여맨다. 때로는, 정확성을 기하려다가 오히려 본뜻을 해치고 왜곡하기도 한다.
그 고통스러운 번역을, 그것도 까다롭기로 소문난 언어(영어)의 마술사 블라디 나보코프의 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게 된 비운의 전직 피아니스트. 그리고 그를 돕는 아마추어 번역가인 '나'. 소설의 번역후기를 읽고 난 뒤에야 작품이 실제 인물과 배경을 바탕으로 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름 휴양지인 한 섬에서 까다로운 번역을 맡게 된 번역가를, 그를 흠모하는 생텍쥐베리의 증손녀의 지휘 아래 섬 사람들이 모여서 번역일을 돕게 된다는 이야기는 얼핏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떠올리게 한다. 바벨탑이 무너진 이래 흩어진 언어들을 모으는 힘겨운 작업에 뛰어든 섬 사람들의 모습은 칠레의 어촌마을에서 시와 메타포에 눈을 뜨는 한 우편배달부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두 작품 다 시종일관 신선한 유머와 익살, 감칠맛나는 언어의 향연이 펼쳐진다는 점도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언어란 까다롭지만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존재다. '세상 만물은 말이 있음으로써 존재한다'고 보는 저자 에릭 오르세나의 말처럼,세상 이곳저곳에 숨겨진 언어들을 찾아 오늘도 글을 쓰고 번역하고 책을 만드는 모든 이들이, 그저 먹성 좋게 읽기만 하는 독자로서는 감사할 뿐이다.^^
고양이는 털가죽으로 싸인 낱말이다. 낱말들이 그렇듯이 고양이들은 호락호락 순치되는 법이 없이 인간의 주위를 배회한다. 기차를 타기 전에 고양이를 바구니에 담는 것은 기억 속에서 정확한 낱말을 포착하여 백지에 자리 잡게 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낱말과 고양이는 둘 다 포착하기 어려운 종족에 속한다.
정원 역시 말들이 무더기무더기 널려 있는 난삽한 공간이다. 그곳을 산책하면서 식물의 이름을 부를 줄 모르는 사람은 어렴풋한 표면밖에 감상하지 못한다. 그곳은 천지창조 이전의 세계-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와 비슷하다.
쓰다보니 내가 이 책을 읽고 느꼈던 감정을 반에 반도 다 담지 못했다. 역시, 언어란 어렵다..............
http://blog.aladdin.co.kr/mramor/2471408 정영목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6061719015&code=900308
이세욱
이들 말고도 한국의 유명한 번역가 이름을 대라면 일본문학에서 양억관, 김난주, 프랑스 문학에서 김화영, 영미 문학에서 김석희 등을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사람들은 번역가를 따져가며 까다롭게 책을 읽진 않는다. (그보다는 책을 아예 안 읽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그러나 조금이라도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번역의 질이 가독성이나 원저의 의미 전달 등 독서에서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세상에 좋은 글이 있고 나쁜 글이 있으면 번역에도 좋고 나쁨이 나눠진다는 사실! 하긴,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 어찌 쉽기만 할까.
따지고 보면 번역이란 외과 수술에 비할 수 있을 만큼 고통스러운 직업이다. 번역가는 문장을 가르고 의미를 잘라 내고 언어유희를 이식하며, 큰 것을 잘게 부수고 끊어진 것을 동여맨다. 때로는, 정확성을 기하려다가 오히려 본뜻을 해치고 왜곡하기도 한다.
그 고통스러운 번역을, 그것도 까다롭기로 소문난 언어(영어)의 마술사 블라디 나보코프의 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게 된 비운의 전직 피아니스트. 그리고 그를 돕는 아마추어 번역가인 '나'. 소설의 번역후기를 읽고 난 뒤에야 작품이 실제 인물과 배경을 바탕으로 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름 휴양지인 한 섬에서 까다로운 번역을 맡게 된 번역가를, 그를 흠모하는 생텍쥐베리의 증손녀의 지휘 아래 섬 사람들이 모여서 번역일을 돕게 된다는 이야기는 얼핏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떠올리게 한다. 바벨탑이 무너진 이래 흩어진 언어들을 모으는 힘겨운 작업에 뛰어든 섬 사람들의 모습은 칠레의 어촌마을에서 시와 메타포에 눈을 뜨는 한 우편배달부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두 작품 다 시종일관 신선한 유머와 익살, 감칠맛나는 언어의 향연이 펼쳐진다는 점도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언어란 까다롭지만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존재다. '세상 만물은 말이 있음으로써 존재한다'고 보는 저자 에릭 오르세나의 말처럼,세상 이곳저곳에 숨겨진 언어들을 찾아 오늘도 글을 쓰고 번역하고 책을 만드는 모든 이들이, 그저 먹성 좋게 읽기만 하는 독자로서는 감사할 뿐이다.^^
고양이는 털가죽으로 싸인 낱말이다. 낱말들이 그렇듯이 고양이들은 호락호락 순치되는 법이 없이 인간의 주위를 배회한다. 기차를 타기 전에 고양이를 바구니에 담는 것은 기억 속에서 정확한 낱말을 포착하여 백지에 자리 잡게 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낱말과 고양이는 둘 다 포착하기 어려운 종족에 속한다.
정원 역시 말들이 무더기무더기 널려 있는 난삽한 공간이다. 그곳을 산책하면서 식물의 이름을 부를 줄 모르는 사람은 어렴풋한 표면밖에 감상하지 못한다. 그곳은 천지창조 이전의 세계-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와 비슷하다.
쓰다보니 내가 이 책을 읽고 느꼈던 감정을 반에 반도 다 담지 못했다. 역시, 언어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