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독서/소설의 그림자
내게는 어려웠던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koala초코
2009. 2. 19. 12:12
간간히 도서관에서 샛노란 표지에 끌려 뒤적거리기만 했던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중앙일보> 작가가 뽑은 작가의 책(3)김연수->김원우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선생의 신간 소설을 읽는 일은 내 은밀한 즐거움 중의 하나다. 은밀하다는 말에 불순한 속셈 같은 건 하나도 없다. 다만 많은 사람이 선생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이 즐거움이 은밀해졌다는 소리다.
나는 매번 소설을 쓸 때마다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게 “이젠 이력이 붙을 때도 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그럴 리가. 그 사람은 김원우 선생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게 틀림없다. 지난해에 선생이 출간한 장편소설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을 읽어보면, 허투루 쓴 문장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말이 유장하게 계속 이어지는데도 어디 하나 비틀어지거나 꼬이지 않는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둘째치고라도 그 문장 하나하나를 중얼중얼 읽는 것만으로도 눈과 입이 호사를 누린다. 어느 쪽을 펼쳐 봐도 원경과 근경의 초점이 모두 정확하게 맞은, 신기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사진을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대개 산문 정신은 이런 문장 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것이라 짐작한다. 이 소설에는 신의주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월남한 의사의 삶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나온다. 구체적인 세계를 다루는 산문이 어떤 식으로든 그 세계를 초월할 때는 바로 이런 경우를 당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여기에 대처하는 일반의 태도는 선생이 여러 작품에서 언급했듯이 두루뭉술한 태도이리라. 하지만 두루뭉술하게 접근하는 건 선생이 여러 작품에서 지적했듯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거니와, 소설에서는 산문 정신에 가닿기는커녕 하나마나한 중언부언에 그칠 따름이다.
그런 까닭에 독자로서 나는 선생의 작품을 즐겁게 읽지만, 작가로서는 따라 읽는 게 힘에 부친다. 자칭 작가라고 말했지만, 속내를 털어놓자면 선생 앞에서는 면구스럽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안면몰수하고 나는 선생의 작품은 물론 그 인품도 존경한다. 등단할 때부터 선생에게 여러 번 면박을 당했지만, 그럴 때조차도 나는 즐거웠다. 그렇게 소설가란 작품을 쓸 때마다 다시 소설가가 되는 자라는 사실을 배웠으니까. 그런 판국에 거기 어디에 이력이 붙을 여유가 있을까.
2009년에 다시 읽는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은 또 새롭다. 이 소설에는 ‘먼차우전 증후군’이 나온다. 병든 것처럼 처신해서 얼렁뚱땅의무를 방기하는 태도다. 환자가 아닌데도 앓는 소리를 내는 데는 저마다 남모를 속사정이 있는 법.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문장에 넋을 놓고 읽고 나면 이 집단적인 무병신음, 즉 병 없이 내는 앓는 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출처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462061
(근데 왜 카테고리가 연예일까...?)
좋아하는 작가가 읽고 추천한 책이니까 읽는다. 간단명료한 이유로 주저없이 책을 집어들었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잠시 접고 한숨 돌릴까 하고 펼쳐들었다가 되려 한숨을 열 번도 더 푹푹 내쉬었다. 하긴, 저 위의 글에 작가로서는 따라 읽는 게 힘에 부친다 는 대목을 무심히 넘어간 내 잘못이긴 하다. 알량하게 독서량 채워보자고 쉬운 책만 찾아 읽는 건 친구인 독서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성장하려면 어려운 고비에 도전하고 넘어설 줄 알아야 한다고 '허풍스런 생각'도 해 보며 끈질기게 책을 읽어나갔다. 한국어에 이런 말도 있었구나 하는 단어의 향연, 잠깐 딴생각이라도 해서 한 문장이라도 놓치면 금새 길 잃고 마는 촘촘한 문장의 숲, 2년 전 김연수 작가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던 주제의식, 등등등. 초반의 고비를 넘기자 설익던 단어들이 차차 눈에 익기 시작했고,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진짜 대상을 중반부에 가서야 발견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그 뒤로 단숨에 결말까지 도달, 일주일만에 완독했다.
소설에 대한 얘기를 하자니, 내 배경지식은 너무 미천하고 주제의식에 대해서도 아직 다 수용이 안 된 상태로 읽기만 다 읽어서 주절주절 쓸데없이 말을 길게 늘이고 싶진 않다.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저 위의 글로 충분하다. 다만 풍요로운 소설이라는 점,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소설이라는 점만 과장해서 덧붙여본다. 어렵구나, 어려워. 독서란 게 왜 이리 하면 할수록 어려워만 가는지. 이런 게 성장의 징후일까?
<중앙일보> 작가가 뽑은 작가의 책(3)김연수->김원우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선생의 신간 소설을 읽는 일은 내 은밀한 즐거움 중의 하나다. 은밀하다는 말에 불순한 속셈 같은 건 하나도 없다. 다만 많은 사람이 선생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이 즐거움이 은밀해졌다는 소리다.
나는 매번 소설을 쓸 때마다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게 “이젠 이력이 붙을 때도 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그럴 리가. 그 사람은 김원우 선생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게 틀림없다. 지난해에 선생이 출간한 장편소설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을 읽어보면, 허투루 쓴 문장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말이 유장하게 계속 이어지는데도 어디 하나 비틀어지거나 꼬이지 않는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둘째치고라도 그 문장 하나하나를 중얼중얼 읽는 것만으로도 눈과 입이 호사를 누린다. 어느 쪽을 펼쳐 봐도 원경과 근경의 초점이 모두 정확하게 맞은, 신기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사진을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대개 산문 정신은 이런 문장 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것이라 짐작한다. 이 소설에는 신의주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월남한 의사의 삶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나온다. 구체적인 세계를 다루는 산문이 어떤 식으로든 그 세계를 초월할 때는 바로 이런 경우를 당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여기에 대처하는 일반의 태도는 선생이 여러 작품에서 언급했듯이 두루뭉술한 태도이리라. 하지만 두루뭉술하게 접근하는 건 선생이 여러 작품에서 지적했듯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거니와, 소설에서는 산문 정신에 가닿기는커녕 하나마나한 중언부언에 그칠 따름이다.
그런 까닭에 독자로서 나는 선생의 작품을 즐겁게 읽지만, 작가로서는 따라 읽는 게 힘에 부친다. 자칭 작가라고 말했지만, 속내를 털어놓자면 선생 앞에서는 면구스럽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안면몰수하고 나는 선생의 작품은 물론 그 인품도 존경한다. 등단할 때부터 선생에게 여러 번 면박을 당했지만, 그럴 때조차도 나는 즐거웠다. 그렇게 소설가란 작품을 쓸 때마다 다시 소설가가 되는 자라는 사실을 배웠으니까. 그런 판국에 거기 어디에 이력이 붙을 여유가 있을까.
출처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462061
(근데 왜 카테고리가 연예일까...?)
좋아하는 작가가 읽고 추천한 책이니까 읽는다. 간단명료한 이유로 주저없이 책을 집어들었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잠시 접고 한숨 돌릴까 하고 펼쳐들었다가 되려 한숨을 열 번도 더 푹푹 내쉬었다. 하긴, 저 위의 글에 작가로서는 따라 읽는 게 힘에 부친다 는 대목을 무심히 넘어간 내 잘못이긴 하다. 알량하게 독서량 채워보자고 쉬운 책만 찾아 읽는 건 친구인 독서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성장하려면 어려운 고비에 도전하고 넘어설 줄 알아야 한다고 '허풍스런 생각'도 해 보며 끈질기게 책을 읽어나갔다. 한국어에 이런 말도 있었구나 하는 단어의 향연, 잠깐 딴생각이라도 해서 한 문장이라도 놓치면 금새 길 잃고 마는 촘촘한 문장의 숲, 2년 전 김연수 작가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던 주제의식, 등등등. 초반의 고비를 넘기자 설익던 단어들이 차차 눈에 익기 시작했고,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진짜 대상을 중반부에 가서야 발견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그 뒤로 단숨에 결말까지 도달, 일주일만에 완독했다.
소설에 대한 얘기를 하자니, 내 배경지식은 너무 미천하고 주제의식에 대해서도 아직 다 수용이 안 된 상태로 읽기만 다 읽어서 주절주절 쓸데없이 말을 길게 늘이고 싶진 않다.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저 위의 글로 충분하다. 다만 풍요로운 소설이라는 점,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소설이라는 점만 과장해서 덧붙여본다. 어렵구나, 어려워. 독서란 게 왜 이리 하면 할수록 어려워만 가는지. 이런 게 성장의 징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