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독서/한 권의 책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koala초코 2009. 7. 12. 12:37
 제목이야 [거의 모든 것의 역사]지만 과학사에 치중된 내용. 하기야 과학만큼 중요한 삶의 기반학문이 어디있겠습니까...뼛속까지 인문계인 저로서도 인정.

30p 우주의 끝을 찾을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유 때문에, 우주의 중심에 서서 "이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곳이 바로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저 우리는 언제나 우주의 중심에 있을 뿐이다. 실제로는 그런 사실을 확신할 수는 없다.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다. 그저 과학자들은 우리가 실제로 우주의 중심에 있을 수는 없지만(그것이 무슨 뜻인가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그 위치에 상관없이 똑같을 것이라고 가정할 뿐이다. 아직도 우리는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148p 원자들은 신기할 정도의 영속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수명이 아주 긴 원자들은 정말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 당신의 몸 속에 있는 원자들은 모두 몸 속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몇 개의 별을 거쳐서 왔을 것이고, 수백만에 이르는 생물들의 일부였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우리는 정말로 엄청난 수의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죽고 나면 그 원소들은 모두 재활용된다. 그래서 우리 몸 속에 있는 원자들 중의 상당수는 한때 셰익스피어의 몸 속에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원자의 수가 수십억 개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부처와 칭기즈 칸, 그리고 베토벤은 물론이고 여러분이 기억하는 거의 모든 역사적 인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도 각각 수십억 개씩은 될 것이다(원자들이 완전히 재분배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에 반드시 역사 속의 인물이라야만 한다. 당신이 아무리 원하더라도 엘비스 프레슬리의 몸 속에 있던 원자들은 아직 당신의 몸 속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은 우리는 모두 윤회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죽고 나면, 우리 몸 속에 있는 원자들은 모두 흩어져서 다른 곳에서 새로운 목적으로 사용된다. 나뭇잎의 일부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몸이 될 수도 있으며, 이슬방울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원자들은 실질적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원자들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가는 아무도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마틴 리스는 아마도 10의 35승 년은 될 것이라고 한다. 보통의 방법으로 나타내기에는 너무나도 큰 숫자이다.

188p 결국 우리는 나이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도 없고, 거리를 알 수 없는 곳에 있는 별들에 둘러싸여서, 우리가 확인도 할 수 없는 물질로 가득 채워진 채로,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물리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우주에 살고 있다는 셈이다.

306p 우리가 살아 움직이도록 해 주는 화학물질이 놀라울 정도로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금붕어나, 상추나, 인간처럼 살아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의 네 가지 주된 원소들과, 주로 황, 인, 칼슘, 철을 비롯한 몇 가지 다른 원소들이 조금씩 필요할 뿐이다. 이런 원소들을 30여 가지의 방법으로 조합하면 당이나 산을 비롯하여 살아있는 어떤 것도 만들 수 있는 기본적인 화합물을 만들 수 있다. 도킨스가 지적했듯이 "생물을 구성하는 물질에는 특별한 점이 아무것도 없다. 살아있는 생물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분자들의 집합일 뿐이다."

353p 생명이라는 것이 그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생명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계획과 소망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존재라는 스스로의 믿음을 끊임없이 이용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지의류에게 생명이란 무엇일까? 지의류가 존재하고 싶어하는 충동은 우리만큼 강하거나 어쩌면 더 강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숲속의 바위에 붙어서 수십 년을 지내야만 한다면 절망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의류는 그렇지 않다. 거의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끼류는 자신의 존재를 이어가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어떠한 모욕도 참아낸다. 간단히 말해서 생명은 그저 존재하고 싶어할 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물은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주 흥미롭다.
 생명은 야망을 가지기에 충분한 기간 동안 존재해왔기 때문에 그런 사실이 조금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만약 45억 년에 이르는 지구의 역사를 하루라고 친다면, 최초의 단순한 단세포 생물이 처음 출현한 것은 아주 이른 시간인 새벽 4시경이었지만, 그로부터 열여섯 시간 동안은 아무런 발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루의 6분의 5가 지나버린 저녁 8시 30분이 될 때까지도 지구는 불안정한 미생물을 제외하면 우주에 자랑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런 후에 마침내 해양 식물이 처음 등장했고, 20분 후에는 최초의 해파리와 함께 레지널드 스프리그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처음 발견했던 수수께끼 같은 에디아카라 동물상이 등장했다. 밤 9시 4분에 삼엽충이 헤엄치며 등장했고, 곧 이어 버제스 이판암의 멋진 생물들이 나타났다. 밤 10시 직전에 땅 위에 사는 식물이 느닷없이 출현했다. 그리고 하루가 두 시간도 남지 않았던 그 직후에 최초의 육상동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구는 10분 정도의 온화한 기후 덕분에 밤 10시 24분이 되면서 거대한 석탄기의 숲으로 덮였고, 처음으로 날개 달린 곤충이 등장했다. 그 숲의 잔재가 오늘날 우리에게 석탄을 제공해주었다. 공룡은 밤 11시 직전에 무대에 등장해서, 약 45분 정도 무대를 휩쓸었다. 그들이 자정을 21분 남겨둔 시각에 갑자기 사라지면서 포유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인간은 자정을 1분 17초 남겨둔 시각에 나타났다. 그런 시간 척도에서 기록으로 남아 잇는 우리의 역사는 겨우 몇 초에 해당하는 기간이고, 사람의 일생은 한순간에 불과하다. 이렇게 가속화된 하루에서 보면, 대륙은 잇따라서 불안정하게 미끄러지면서 서로 충돌한다, 산들이 솟았다가 사라지고, 바다가 등장했다가 말라버리고, 빙하가 커졌다가 줄어들기도 한다. 그리고 대략 1분에 세 차례 정도씩 맨슨 크기나 그보다 더 큰 운석이나 혜성이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불꽃이 번쩍인다. 그렇게 찧어대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도대체 생명이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사실 오랫동안 견뎌내는 생물은 많지 않다.
 지구의 45억 년 역사에서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최근에 등장한 것인가를 더 잘 이해하려면, 두 팔을 완전히 펴고, 그것이 지구의 역사 전체를 나타낸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맥피의 [분지와 산맥]에 따르면, 그런 잣대에서 한 손의 손톱 끝에서부터 다른 손의 손목까지가 선캄브리아기에 해당한다. 고등 생물은 모두 손바닥 안에서 생겨났고, "인간의 모든 역사는 손톱줄로 손톱을 다듬을 때 떨어져나오는 중간 크기의 손톱 부스러기 하나에 들어가버린다."
 다행히 재앙의 순간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지만, 그런 순간이 다가올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이 시점에서 우울한 사실을 밝히고 싶지는 않지만,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에게는 아주 중요한 특성이 있다. 그것이 바로 멸종이다. 그런 멸종은 비교적 정기적으로 찾아온다. 생물종들은 지구상에 출현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지만, 쓰러져서 죽어가는 일도 역시 일상적인 것이다. 그리고 더 복잡하게 발전한 생물일수록 더 빨리 멸종해버리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생물들이 큰 야망을 가지지 못하는 것도 아마도 그런 이유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생물이 무엇인가 용감한 일을 할 때마다 그것은 상당한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나 생명이 바다에서 튀어나온 것보다 더 중대한 사건은 없었을 것이다.

441p 또다른 친구였던 알렉산데르 폰 훔볼트는 그런 아가시를 보면서 과학적 발견에는 세 단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부정을 하고, 그 후에는 그 중요성을 부정하며, 마지막으로는 엉뚱한 사람에게 그 업적을 인정해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