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독서/한 권의 책

이런, 이게 바로 나야!

koala초코 2009. 9. 4. 12:54

보르헤스와 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머리가 없는 나, 도널드 하딩
마음의 재발견, 해롤드 모로위츠
계산 기계와 지능, 앨런 튜링
튜링 테스트-다방에서의 대화,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전주곡-개미의 푸가
공주 이네파벨, 스타니슬라프 렘
동물 마사의 영혼, 테렐 미대너
동물 마크ⅲ의 영혼
영혼, 앨런 휠리스
이기적인 유전자와 이기적인 밈, 리처드 도킨스
어느 뇌 이야기, 아놀드 즈보프
나는 어디에 있는가? 다니엘 데닛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데이비드 홀리 샌퍼드
거부 반응을 넘어서, 저스틴 라이버


 애석하게도 책의 편집자이자 저자인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글이 가장 길고 재미없었다.(ㅋㅋㅋ) 그 외엔 과학적이면서도 SF에 가까운 다양한 글들이 재미있었다. 글 뒤에 붙은 해설들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새겨읽을만한 것들이다. 가령 이런 부분들.


90p 소설가가 여러 가지 가능한 스토리 전개 방식을 동시에 생각할 경우, 등장인물들은 정신적 상태 중첩 속에서 은유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을까? 가령, 그 소설이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면, 분열한 등장인물들이 소설가의 머릿속에서 복수의 줄거리를 계속 전개할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어떤 이야기가 진짜(genuine)버전인지 묻는 것은 매우 기이한 느낌을 줄 것이 분명하다. 모든 세계는 동등하게 진짜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그토록 후회하는 멍청한 실수를 하지 않은 세계(보편적 파동함수의 하나의 가지인)가 아직도 존재한다. 그런 세계가 부럽지 않은가? 그러나 어떻게 '자기 자신'을 부러워할 수 있을까? 그 밖에도 당신이 더 멍청한 실수를 저지른 또 다른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세계에 있는 당신은 지금 여기 '이'세계에 있는 바로 이 당신을 부럽게 생각하고 있다!
 보편적 파동 함수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하늘에 있는 위대한 소설가, 결국 신의 마음(독자의 기호에 따라서는 신의 두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속에는 모든 가능한 선택지가 고려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신의 두뇌의 서브시스템이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은하가 유일한 진짜 은하가 아니듯이, 우리의 이러한 변형판(version)들도 그중 어느 것이 더 특권을 갖거나 더 진짜인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신의 두뇌는 아인슈타인이 늘상 주장했듯이 매끄럽고 결정론적으로 진화한다. 물리학자 폴 데이비즈는 그의 저서 [다른 세계들Other Worlds]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의식은 우주의 끊임없이 분기하는 진화적 경로를 임의적으로 누비며 진전해 왔다. 그러므로 주사위 놀이를 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 각자가 제기하는 다음과 같이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주지 못한다. '왜 자신에 대해 느끼는 단일한 감각이 어느 다른 가지가 아니라 '이'임의의 가지를 따라 전달되는 것일까? 나 스스로가 찾아냈다고 느끼는 이 가지를 택한 임의적인 선택에 도대체 어떤 '법칙'이 내재하는 것인가? 내가 다른 나와 헤어졌을 때, 왜 나 자신에 대한 느낌이 다른 경로들을 따라 다른 나들me's에게는 전달되지 않는 것인가? 시간상의 이 순간에, 우주의 이 가지를 따라 전개되어 온 이 육체의 견해에 '나임me-ness'을 부여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물음은 너무도 근본적인 것이어서 언어를 사용한 명확한 정식화는 아예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양자역학이 그 답을 제공해 줄 것 같지도 않다. 사실 이것은 에버렛에 의해 양탄자 속으로 깊숙이 처넣어져 반대 쪽 저편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파동 함수의 붕괴와 정확히 같다. 그것은 개인의 자아 동일성의 문제로 나타나서, 그것이 대체시킨 원래의 문제만큼이나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분기하는 하나의 거대한 보편적 파동 함수의 가지들 중에 양자역학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가지들이 있고, 에버렛이나 양자역학의 다중 세계 해석이 존재하지 않는 지류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이 역설의 구덩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보르헤스의 이야기가 씌어지지 않은 가지도 존재한다. 그리고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나를 찾아서'와 정확히 똑같지만, 이 마지막 문장만 다른 결론으로 끝나는 가지도 있을 것이다.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를 읽은 뒤로 쭉 고민해왔던 생각들이 다른 책에서 가지를 뻗어나가 한결 명료해진다. 이 책을 읽은 나, 읽고 있는 나, 이미 읽은 나, 전혀 손도 안 댄 나, 그 중에서 내가 의식하고 있는 바로 '나'란 존재는, 대체 누구인가?


148p 팻 : 자네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읽었던 [장자]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군. 두 사람의 현자가 시냇물 위에 걸쳐진 다리 위에 서 있었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어. '내가 물고기라면 좋겠군. 물고기들은 정말 행복해 보이네!' 그러자 상대 현자가 이렇게 대답했어. '물고기가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 자네가 어떻게 알 수 있나? 자네는 물고기가 아닐세.'그러자 처음에 말을 꺼낸 현자가 '하지만 자네는 내가 아닌데, 내가 물고기의 느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나?'라고 응수했다네.
샌디 :정말 멋진 이야기군! 정말이지 의식에 대한 논의는 일정 정도의 제약을 필요로 하지. 그렇지 않으면 유아론唯我論이라는 악대 차량에 뛰어올라 '오직 나만이 이 우주에서 의식을 가진 유일한 존재'라고 주장하거나, 거꾸로 범심론汎心論에 빠져서 '무릇 이 우주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이 의식을 갖는다!'라고 우겨댈 테니까.

195p 노암 촘스키와 그 밖의 살마들은 본질적으로 사람다움이란 우리의 천부적인 어넝 능력에 있고, 이것은 모든 언어가 그 심층에서 공유하고 있을 일종의 '근본 문법primal grammar'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침팬지와 그 밖의 영장류들은 우리의 근본 문법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우리와 차이를 갖게 되는 셈이다.


210p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물활론자物活論者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차에 '인격'을 부여한다. 타자기와 장난감이 '영혼'을 갖고 있고,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것을 불 속에 넣기 어려운 것은 우리의 일부가 소실되기 때문이다. 이런 대상에 우리가 투영하는 '영혼'은 분명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이미지이다.


236p 복제자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키기 위해 이용한 기술과 책략에서 점진적 개량에 어떤 목적과 같은 것이 있었을까? 개량을 위한 시간은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그렇듯 장구한 시간이 어떤 교묘한 자기 보존의 엔진을 만들어낸 것일까? 40억년 후에 어떤 운명이 이 오래된 복제자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들은 죽어 없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존술의 달인들이었으니까. 그러나 바닷속을 유유히 떠도는 복제자의 모습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마치 기사처럼 오만한 자유를 이미 오래 전에 포기해 버린 것이다. 이제 그들은 엄청나게 크고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 들어찬 로봇 내부에 안전하게 들어 있고, 거대한 집단을 이루어 군집하게 되었다. 이들 복제자는 외부 세계로부터 격리되어 꼬불꼬불 구부러진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외계와 소통하며 원격 조종으로 외부 세계에 조작을 가하게 되었다. 그들은 당신과 내 속에 있다. 그들이 우리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의 보존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인 것이다. 이들 복제자는 긴 여정을 지나왔다. 이제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한 생존 기계이다.


 참고로, 이 책은 2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어디선가 2권은 끔찍할 정도로 어렵단 말을 들어서 아마 2권은 쳐다보지도 않을 듯하다. 이 책도 읽는 데 만만찮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