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틀은 언제입니까
처음으로 읽어본 장정일의 소설
우익, 좌파, 영남, 호남, 동성애, 자극적인 소재가 소설 곳곳에서 쉼 없이 쏟아지지만, 특히 '우익 청년 탄생기'라는 소설의 핵심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소설 자체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야기 진행이 별로 마음에 들진 않는다...읽다가 기겁-.-)
'구월의 이틀'이라는 제목의 의미만으로도 이 소설은 가치가 있다.
이미 지나가버린, 나만의 구월의 이틀의 그림자를 떠올리며...
131p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시 속의 이틀은, 우리에게 두 가지 비의를 가르쳐줍니다. 구월은 30일이나 되지만 시이닝 이 시를 쓰는 데는 단지 이틀만 필요했다는 것. 나는 이 대목이 문학에 관한 어떤 비밀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많은 어른들은 '내가 살았던 것을 그대로 적으면 소설 몇 권 분량이 된다'고 말하는데, 육십 평생의 행적이 몇 권 분량의 다큐멘터리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소설'로 화하지는 않습니다. 예술은 우리의 원체험, 각성의 순간 혹은 내면에 억압된 정신적 상처와 같은 숨어 있는 이틀을 끄집어내는 것이지, 자신의 인생 전체를 나열하는 게 아닙니다. 이게 '현대문학의 이해'를 여러분께 가르쳐야 하는 내가, 이 시로부터 찾아낸 문학의 비밀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문학은 내 삶을 구구절절이 받아 적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내 삶이 망각해버린 이틀, 혹은 내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2인치를 찾아내는 겁니다.
(...)<구월의 이틀>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또 하나의 비의는 인생 혹은 청춘에 관한 것입니다.
(....)나의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삶의 어느 한 때를 가리켜 인생이라고 할 뿐, 일평생이 인생은 아니다.' 다시 말해 나의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인생이란 20대의 어느 한 때를 가리킬 뿐'이랍니다. 나머지는 인생이 아니라 '그냥 어영부영', '쓰게다시', '덤', '부록', '죽지 못해', '타성'일 분이랍니다. 무슨 말인 줄 알겠죠? 지금 막 여러분을 찾아온 청춘, 열여덟이거나 열아홉 혹은 스무 살일 나이인 바로 이때가, 저 두 시에 나오는 하루이거나 이틀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막 대학교에 입학한 여러분, 빙하시대를 불태워버릴 열정으로 이틀 혹은 하루뿐인 당신의 인생을 사십시오. 이 짧은 청춘의 날이 지나가고 나면, 여러분은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울게 됩니다.
330p 나는 소설을 쓰겠어. 언젠가 너는 중세의 알레고리였던 '바보들의 배'에 비유해서, 문학을 '패배자들의 배'라고 불렀지. 문학은 세상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타는 배나 같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까 말한 국민작가라는 개념으로부터, 나는 문학이란 현실로부터 패배한 자들의 산물이라는 일반적인 속설은 물론이고 너의 위조지폐범론을 뛰어넘는 가능성을 발견했어. 그건 네가 하려는 정치보다 보잘것없거나, 힘이 없는 게 결코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