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독서/소설의 그림자

곰브로비치의 페르디두르케

koala초코 2010. 4. 4. 13:13
p132 때가 왔도다. 시간이 되었도다. 형식을 극복하라. 형식을 벗어던지라! 여러분의 경계를 긋는 것들에는 더 이상 동일시되지 마라! 예술가인 여러분 스스로를 표현하지 마라. 여러분 자신이 하는 말을 신뢰하지 마라. 여러분의 믿음을 경계하고 여러분의 감정을 믿지 마라. 여러분의 겉모습을 떨쳐 내고, 마치 새가 뱀을 무서워하는 것처럼, 그 모든 외면화를 두려워하라.
(...)우리 인간을 이루는 요소는 바로 영원한 미성숙이다.

 서른 살 먹은 주인공이 어느 날 아침 어린 아이로 납치되어 고전적인 훈장 핌코에게 또 납치되어 학교로 끌려가 더없이 현대적인 여고생이 있는 하숙집에 빠져들었다가 주인공의 이모가 사는 시골 귀족과 머슴이 있는 저택으로 끌려 갔다가...소설 마지막 한 마디, '제기랄!' 쉼표도 마침표도 없이 줄거리를 요약하는 내 입에서도, '제기랄!'
 줄거리의 황당함에 당황하지 말자. 독자의 황당한 당황스러움이야말로 작가가 원하던 바일 테니까. 제목도, 이야기 구성도, 스토리도 무의미하고 '형식을 벗어 던진' 이런 소설들을 키치라고 부르던가? 쓰레기를 쌓아놓고 예술이라 하는? 어떤 이는 눈 앞의 무의미에 화를 내며 돌아설 것이고, 또 누군가는 어떻게는 의미를 찾아내보려고 더미를 마구 파헤쳐 놓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곰브로비치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려나? '내가 이미 형식을 극보가라고 명령문 형식까지 써 가며 강력히 말했는데, 하여튼 깐깐한 훈장들이란!'
 그래 그냥 읽자. 무의미는 무의미대로 있으라고 가만 놔 두자. 미성숙한 작품에 성숙의 탈을 덧씌우려 고통스럽게 노력하지 말자. 왜 우리는 문학만 책만 보면 덜컥 겁을 집어먹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작품을 헤집을 펜과 자를 집어드는지? 잘못된 문학교육 때문이라는 상투적인 이유로? 해독되지 않은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p299 하지만 기본이 되는 본질적인 고통은 어쩌면 바로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한계에서 오는 고통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타인의 상상력은 우리를 한정된 공간 안에 쑤셔 박아버리고, 그 좁은 공간에서 우리는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지 않는가.

 그러니까, 한없이 미쳐 날뛰는 이 소설을, 마음껏 뛰어다니게 내버려두자.
 그 미친 이야기의 이상한 세계에 즐거워하는 나 같은 독자도 있다.
 우스꽝스럽고, 역겹고, 소름끼치기도 하는 저 페르디두르케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