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문학공부센터

소설가가 이야기하는 소설 쓰는 법

koala초코 2010. 7. 18. 13:14

[소설, 어떻게 쓸 것인가?] 프랜신 프로즈, 윤병우 옮김, 민음사

 

 소설, 어떻게 쓸 것인가? 읽으면 된다. 선대 소설가들이 남기고 간 위대한 작품들과, 당대 작가들이 내놓고 있는 생생한 소설들을 꼼꼼히 읽어 나가다 보면 어떻게 써야 되는지 깨닫게 된다. 이 두 줄로 이 책은 소개 가능하다. 읽으면 된다. 대신 단어 하나하나까지 아주 꼼꼼하고 세밀하게.

 

 하지만 이건 너무 쉬운 대답이 아닌가? 소설 쓰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너도나도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고 대답하는 이 바닥에 작정하고 그저 읽어라! 고 말하는 이 책을 보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쩌겠는가. 내가 이 책을 쓴 목적 가운데 하나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을 소설가들이 어떻게 배우는가'하는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이다. 소설가들이 아는 것은, 궁극적으로 소설가들은 습작과 노력과 반복되는 시도와 실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존경하는 책으로부터 배운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나는 소설가로서 자신이 받은 교육을 회상하는 것은 물론, 열정적인 독자와 소설가 지망생이 소설가의 독서법을 이해하도록 돕고자 노력할 것이다.(13쪽) 그렇기에 제목만 보면 문예 창작에 관한 비법책 같지만, 꼭 소설가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우리 같은 열정적인 독자라면 이 책에서 얻어갈 게 산더미다.

 

 아무리 그래도 아는만큼 보인다는데, 책의 목차를 훑어보면 소설의 숲을 헤쳐나갈 지도가 눈에 들어온다.

 

소설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 [오이디푸스 왕]에서 숨은 단어 찾기

틀렸지만 전적으로 옳은 단어 선택 - 피츠제럴드는 왜 야자수가 '공손'하다고 썼을까?

아름다운 문장이란 무엇인가? - 헤밍웨이의 '진실한 문장 하나'

문단은 소설가의 DNA와 같다 - 마르케스가 소설이 끝날 때까지 문단을 나누지 않은 까닭

이야기는 스스로 시점을 선택한다 - [폭풍의 언덕]과 마트료시카 인형의 공통점

인물을 창조하는 붓질 - 제인 오스틴이 등장인물을 춤추게 하는 법

생생한 대화와 죽은 대화 - 말하지 않은 것이 말한 것만큼 중요한 이유

세부 묘사 하나가 긴 설명보다 낫다 - 그레고르 잠자의 방에 걸린 여자 그림

무의식을 드러내는 제스처 - 투르게네프가 그려 낸 미소, 한숨, 악수

죽은 규칙은 모두 잊어라 - 체호프의 소설, 체호프의 인생

소설 쓰기 두려울 때 거장의 작품을 읽어라 - 소설이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가?

 

 그렇게 어렵지 않은 기준들이다. 단어, 문장, 문단, 시점, 묘사, 대화, 제스처 등,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어떻게 소설이 구성되는지, 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지 저자는 작품들을 직접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한다. 가령 이렇게,

 

 소설가가 이야기를 잘 통제하고 있으며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세부 사항을 통해 확인할 때 얼마나 안심이 되는가. 가령 그레고르 잠자가 꿈자리가 뒤숭숭한 밤을 보내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해충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는 상황에 다소...확신이 없다고 생각해 보자. 카프카는 "꿈은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그의 말을 믿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곤충 해부학적 사실들은 설득력이 있지만,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이 일본 괴수 영화의 대본이거나, 재능은 있지만 정신 착란 증세가 있는 초보 작가의 공상 과학 소설 한 대목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잠자가 자기 방을 둘러보고 "다만 지나치게 비좁다 싶을 뿐 제대로 된 사람이 사는 방"이라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는 이것이 꿈일 수도 있다는 의심의 마지막 조각을 내려놓고, 이 대목이 걸작 소설의 실제 세계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닫는다.

 '포장이 끌러진 옷감 견본이 펼쳐져 있는 책상 위에는(잠자는 외판사원이었다.) 그가 얼마 전에 어떤 화보 잡지에서 오려내어 예쁜 도금 액자에 넣어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어떤 여자의 모습이었는데 털모자에 털목도리를 두르고 꼿꼿이 앉아 팔꿈치까지 온통 팔을 감싼 묵직한 털 토시를 보는 사람 눈앞에 치켜들고 있었다.'

 이 그림에 대한 묘사는 완벽한 세부 묘사이다. 놀랍고 갑작스러우며 창의적이고 돌발적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그럴듯하고 진지하며 약간은 장난스럽고 재치 있으면서도, 무겁거나 노골적으로 상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잡지에 나오는 털옷으로 무장한 여자 그림은 미혼의 행상인 남자가 자신의 방을 밝게 하기 위해 선택할 것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런 그림이다. 나름대로 섹시하면서도 하녀가 청소할 때 바라보기에 부적절할 정도로 선정적이지는 않은 그림인 것이다. 이 그림을 인정하면서부터 우리는 잠자라는 인물과 그가 곤충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262쪽)

 

카프카의 <변신>을 예로 들어 소설 속의 그림 한 장도 무심히 넘기지 않고 읽어내는 법을 알려준다.

 

내가 이 책에서 특히 인상깊었던 내용은 대화와 제스처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사례처럼 모든 대화는 세련된 동시 처리 작업(multritasking)을 포함한다. 인간은 이야기할 때 정보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고 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을 상대방이 알아채지 못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이 주의를 산만하게 하거나 우리가 말한 것만큼이나 크게 들릴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 대화에는 텍스트만큼 또는 그 이상의 서브 텍스트가 담겨 있다.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이 그아래에서 일어난다. 서툴게 쓰인 대화는 한 번에 기껏해야 한 가지 작업만 수행한다.(192쪽)

 

적절히 사용된, 결코 연극적이거나 극단적이지 않으면서도 독특하고 구체적이고 그럴듯한 제스처는 창문과 같아서 그 창문을 통해 한 사람의 영혼, 내밀한 욕망, 공포 또는 집착, 그 사람과 그의 자아와의 정확한 관계, 그 자아와 세계와의 정확한 관계를 볼 수 있다.(283쪽)

 

 우리는 소설 속 장면 하나, 대화 한 마디, 등장인물의 손짓 하나에 담긴 의미를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소설을 왜 읽는가? 재미있는 이야기니까, 도 답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줄거리만 파악하고 책장을 덮으면 진정으로 그 소설을 읽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글로 쓰여지지 않은 여백을 읽어내는 일이다. 작가가 고심해서 선택한 단어 하나를 두고 수많은 단어들 중에 왜 하필 이 단어를 선택했는지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하며, 왜 등장인물들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차마 말하지 못한 의미들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소설은 인간을, 그리고 인생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 단편들을 읽으며 우리는 생각한다. 인생이란 얼마나 광대한가! 세상을 사는 방식은 얼마나 다양한가! 이 세상에는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고,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우리 인생 전체가 한 순간에 바뀔 수도 있다. 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 세상과 인간의 마음이 측량 가능한 그 어떤 것보다 언제나 더 넓고 깊을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326쪽) 그렇기에 나는 소설을 읽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게 바로 인생이란 진실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 창작과 더불어 저자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