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공포영화, 그중에서도 고어 물을 즐겨 본다.
목과 팔다리가 잘리고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낭자한. 볼 때마다 나는 신기하다.
익숙한 우리의 피부를 단 한 겹만 벗기면 드러나는 낯선 풍경, 혈관과 근육과 뼈들, 내장들, 그것은 나인데 내가 아니다.
내 아래 존재하는 세계지만 우리는 그 세계와 마주한 순간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힐러리 맨틀의 단편집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이것이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이 세계란 얼마나 위태로운가, 피부와도 같은 연약한 껍질에 간신히 유지되고 있을 뿐인데.
읽으면서 가장 소름이 돋았던 단편 <콤마>와 <겨울 휴가>의 태연하고도 잔인한 문장들,
65쪽, 메리는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운명, 그러니까 두들겨 맞고, 몸이 뒤틀리고, 가죽이 벗겨지는 운명들을 지루하게 곱씹었다.(콤마)
103쪽,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화롭게 눈을 감기 전까지는 누구도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겨울 휴가)
이런 문장들이 자그마한 칼날이 되어 우리의 세계에 흠집을 낸다.
들여다보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눈이 가는 가느다란 틈새,
그곳엔 거식증에 걸려 뼈가 된 언니가 누워 있고(심장은 경고도 없이 멈춘다)
택시기사가 차에 치인 건 염소라고 주장한 어린 아이의 작은 손이 있고(겨울 휴가)
결혼한 나의 집 문을 두드리는 파키스탄 남자(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난쟁이 소녀(당신을 어떻게 알아보죠?) 쉼표를 닮았다는 장애아(콤마)가 있다.
우리는 이미 그들과 눈이 마주쳤기에, 눈을 감기 전까진-영원히?-절대 행복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소설을 읽지 않는다.
노련한 작가가 솜씨 있게 잘라 낸 틈을 엿보기 위해 소설을, 특히 단편소설을 즐겨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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