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꽉 찬 단문들, 말들의 풍경, 독자인 나에게도 행복한 책읽기.
53p 우정이 있는 게 아니라, 가끔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한 작가는 꼬집듯 말하고 있다. 사람의 이기적인 면을 잘 꼬집는 말이지만,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정이니 뭐니하는 거창한 말은 빼더라도, 언제 만나도 편안하고 마음놓이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같이 있는 것은 불편해서, 괜히 담배를 피우거나, 해도 괜찮고 안 해도 괜찮은 말을 계속해야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 편안해져서, 구태여 의례적인 말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같이 아무 말 않고 오래 앉아 있으면 불편해지는 사람을 친구라 부르기는 거북하다. 친구란 아내 비슷하게 서로 곁에 잇는 것을 확인만 해도 편해지는 사람이다. 같이 있을 만하다는 것은 어려운 삶 속에서 같이 살아갈 만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우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그 작가는, 바다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친구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과연 놀랍다!
71p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정음사, 1968)의 가장 끔찍한 전언은 맨 앞 대목에 숨겨져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사는 힘은 강하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라....그 동물은 체념에도 쉽게 익숙해진다. 불편하고 더러운 것, 비인간적인 것에 익숙해진 인간의 모습은 더러운 것인가, 안 더러운 것인가?
73p 19세기 소설에 있어, 편지는 의사 소통의 도구이면서, 그것을 뛰어넘어, 인간의 진실한 내면을 드러내 보여주는 도구이다. 현대 소설의 연애가 삭막해진 것은 내면의 고통/즐거움이 전화라는 간편한 의사 소통의 기구로 간소화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목소리로 연애하는 것보다는-거기에는 녹음까지 포함된다-눈으로 연애하는 것이 훨씬 내면적이다. 편지는 전화보다 훨씬 더 내면적이다.
79p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생각으로는, 자기의 욕망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면,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무엇을 왜 욕망하는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그 앎에 대한 욕망은 남의 글을 읽게 만든다. 남의 이야기나 감정 토로는 하나의 전범으로 그에게 작용하여, 그는 거기에 저항하거나 순응하게 된다. 저항할 때 전범은 희화되어 패러디의 대상이 되며, 순응할 때 전범은 우상화되어 숭배의 대상이 된다. 나는 누구처럼 되겠다가 아니면, 내가 왜 그렇게 돼가 된다. 그 마음가짐은 그의 이름붙이기 힘든 욕망을 달래고, 거기에 일시적인 이름을 붙이게 한다. 왜 일시적인가 하면, 전범은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구조는 그렇게 많지 않겠지만.
99p 모든 요괴들은 인간의 분신들이다. 요괴라고 불리는 것들은 자기 정체성이 위기에 처할 때 나타난다. 그것은 이것과 저것의 차이를 지우고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지운다. 나는 남이 되고 남이 내가 된다. 내가 나인 줄 알고 있었는데, 내가 아닐 때, 나는 요괴다. 네가 너인 줄 알고 있었는데, 네가 아닐 때, 너는 요괴다. 우리가 우리인 줄 알고 있었는데-우리를 가두는 우리?-우리가 아닐 때, 우리는 요괴다.
밖은 따뜻한데, 안은 춥다. 그것도 요괴스런 일이다....왜냐하면 안은 따뜻하고 밖이 추운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안은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따뜻하고, 밖은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춥다. 그런데, 요즈음은 밖은 계속 따뜻한데 안은 춥다. 내 마음의 풍경 같다.
165p 타자의 철학 :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
호기심에서 찾아본 1987년 10월 24일의 일기, 내가 세상에 나왔을 때,
117p 정호승의 [새벽 편지](민음사, 1987)는 애절하게 아름답다. 피 묻은 별의 그리움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그의 시는 절제된 슬픔 때문에 애절하다. 피 묻은 별의 그리움이란 자유를 향한 그리움에는 피가 묻게 마련이다는 정치적 상상력의 시적 치환이지만, 그 치환이 경직화되어 있지 아니한 것이 그의 시의 장점이다. 그러나 그 세계의 폭과 깊이는 좁고 얕다.
'평생문학공부센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가가 이야기하는 소설 쓰는 법 (0) | 2010.07.18 |
---|---|
밀란 쿤데라의 커튼 (0) | 2010.03.17 |
존경스러운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 (0) | 2009.06.28 |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0) | 2009.06.18 |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0) | 2009.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