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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독서/한 권의 책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 읽기

 제목은 진짜 촌스러운데 내용은 세련된 유머로 가득해 읽고나서 기분이 좋았다. 역시 김연수 블로그에서 추천글을 읽고 선택.

15p 그리고 바로 그것이 문제다. 책은 어렵게 읽어나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 낭비라는 확고부동한 신념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지한 소설, 이따금 심각하게 지루한 소설이나 엄청난 두께의 장치인 전기를, 돌을 갈아내는 속도로 읽어나간다, 그럴 때마다 책은 어쩐지 의무처럼 느껴지고, <팝 아이돌>같은 잡지에 자꾸만 조금씩 눈길이 간다. 그렇다면 부디, 제발 부탁이나 그런 책은 내려놓으시라.
 그리고 부디, 제발 부탁이니 재미있어서 책을 읽는 사람들, 아마 [다빈치 코드]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잘난 척하지 마시라. 우선, 개개인의 독자에게 이런 노력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책은 그 독자가 처음으로 읽은 장편 성인소설일 수도 있다. 여태까지 다른 사람들이 책에서 느끼는 매력을 잘 알 수 없었던 누군가에게 마침내 독서의 목적과 즐거움을 알려준 책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쨌거나, 즐기기 위한 독서야말로 우리 모두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모두 칙릿이나 스릴러를 읽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하지만 여러분이 그런 책을 읽고 싶다면, 그것 역시 무방하다. 다른 사람들은 결코 이렇게 말해주지 않겠지만, 사실 고전이나 '올해의 책'을 수상한 소설을 읽지 않는다 해도, 나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더욱이, 그런 책을 읽는다고 좋은 일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책장을 넘기는 일이 진창을 걷는 일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책의 존재 목적은 오로지 우리가 읽는 것에 있고, 읽을 수 없는 책이 있다면 여러분의 능력을 탓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좋은'책이 읽기는 상당히 괴로운 경우도 있다.

72p 최근 나는 시간에 관한 현대 이론을 알아야 쓸 수 있는 단편을 쓰려고 애써왔기 때문에, [시간에 대하여]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과학에 관한 책은 들기만 하면 눈물이 흐른다, 그러면 앞을 볼 수 없으니 독서에 큰 방해가 된다.

74p 그렇지 않은가. 책은 다른 어떤 것보다 훌륭하다. 문화 매체를 가지고 권투 경기를 진행한다고 상상해보고, 책을 링 위에 세워놓고 다른 예술 형식과 맞붙게 한다면, 거의 모든 경우에 책이 이길 것이다. 한번 해보자. 오페라 <마적>대 [미들마치]? [미들마치]가 6라운드쯤에서 이길 것이다. <최후의 만찬>과 [죄와 벌]? [죄와 벌]의 판정승. 알겠는가?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과학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설이 이길 것 같다.

158p 하지만 자이드 책에서 가장 멋진 순간은 두 번째 문단에서, '진정한 교양인이란, 읽지 않은 수천 권의 책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태연자약하게 더 많은 책을 원할 수 있는 이들이다.'라는 부분이다.
 그게 바로 나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도! 바로 우리란 말이다! '읽지 않은 수천 권의 책!''진정한 교양인!' 이달의 목록을 보자. 체호프의 서간집, 에이미스의 서간집, 딜런 토마스의 서간집....그걸 다 읽어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체호프부터 시작했지만, 에이미스와 딜런 토마스는 곧 읽을 책더미에 올라가기보다는 서가에 곧장 올라가 영영 자리잡게 되었다. 내가 본 딜런 토마스 책은, <뉴요커>에서 새로 나온 토마스의 전기에 대한 근사한 리뷰를 읽은 직후, (50파운드에서)15파운드로 할인한 것을 보고 산 것이다. 에이미스 서간집은 5파운드짜리였다. 하지만 예술과 문학 논픽션 칸(나는 개인적으로 가정에서 쓰기에는 듀이 분류법보다는 '소소한 관심사'분류법이 더 잘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에 그 책들의 자리를 찾으면서, 문득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가 소유하는 책들은 읽었든지, 읽지 않았든지 간에 우리의 자유재량에 맡겨진, 가장 온전한 자아의 표현이다.

208p 염려되는 두 번째 이유는 말을 대단히 잘하는 사람들만 등장하는 소설을 쓴다는 것이다....흠, 그것은 약간 속임수가 아닌가? 매큐언의 주인공, 그러니까 시인의 아버지이자 사위인 헨리 퍼론은 신경외과 교수에, 그의 아내는 기업담당 변호사다.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사람들답게, 그들은 언어를 잘 쓸 줄 아는 사람들이라 자신의 삶에 대해 매우 직설적으로, 명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퍼론은 '자신의 기분을 습관적으로 관찰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매큐언이란 작가의 존재가 그들에게 낭비되는 느낌이 든다. 그들에게는 매큐언의 도움이 필요 없다. 내가 픽션에서 좋아하는 점은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 아니 최소한 자신의 감정 상태를 묘사할 수단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대신 똑똑하게 말해줄 수 있는 능력이다. 바로 그런 식으로 마크 트웨인이 똑똑했던 것이고, 디킨스도 그랬다. 그리고 로디 도일이 온갖 부류의 사람들, 특히 책을 자주 사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내게는 엄청나게 유식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유식한 이야기를 하도록 만드는 능력보다는 그것이 더 뛰어난 재능처럼 여겨진다.

252p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는 [길리아드]이후의 열광 속에서 샀지만, 현재로서는 이 책을 적어도 이번 생애에서 읽을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해둬야 하겠다. 하지만 아마존에 실린 다음 리뷰에서 유혹을 받았다.

 이 책은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불어 A레블(대학입학자격)수업의 일환으로 이 책을(불어로!)읽어야 한다니, 심리적으로 두려움이 느껴졌다. 한 문단을 읽어나가는 것이 마치 고문 같았고, 나는 괴로워 눈물을 흘리며 불어 선생님과 대학입학자격 심사위원들에 대한 깊고 뜨거운 증오를 느꼈다. 그로 인해 불어로 쓴 과제에 낮은 점수를 받았고, 내가 선택한 대학에 들어가는 데 'C'학점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불어에서 경영학으로 전공을 바꾸어야 했으니, 내 인생 진로를 바꾼 것이었다. 이 책이 싫다고 말하는 것 정도로는 내 감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문학이 인생에 미칠 수 있는 심오한 영향을 아시겠는가? 누가 이것이 다 시간낭비라고 하는가?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종류의 맹렬한 증오를 심어줄 수 있는 책을 한 권만 쓸 수 있다면. 만약 내 책을 읽어보셨다면, 어쩌면 그 책을 사는 데 든 돈이 아깝고, 그것을 읽는 데 낭비한 시간이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낙관적으로, 내 자신을 과장해서 생각해도,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망쳐놓았다고 믿을 수는 없다. 내 생각과는 반대로, 내 책이 누군가의 인생을 망쳐놓았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서류가 있다면 언제나 환영이니 보내주기 바란다.

260p 우리가 고전을 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인생을 살다 보면 자신이 '문학가'인지, 아니면 독서애호가인지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온다. 그리고 나는 독서애호가가 더 재미있게 산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문학가는 [캉디드]같은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문학가로서의 함량이 약간 미달되기 때문이다. 반면 독서애호가는 뭐든 원하는 데로 읽어도 된다.

273p 우리는 문예 소설이 우리 문화의 중심에서 슬프게도 소설이 사라진 사실에 대해 약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끔, 어떤 책은 문학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소설이 내놓는 사상에는 단순한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자체의 복잡성을 어찌할 수가 없는 책이 있다. [하우스키핑]을 읽는 데 시간이 엄청나게 걸렸지만, 이 짧은 책을 빨리 읽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과속방지턱을 자체 내장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구약성서 같은 문장은 로빈슨의 가슴 아프고, 예언적인 이미지에 꼭 맞는 언어다. 그리고 나 역시 이 책을 빠른 속도로 읽어치우지 않아서 기쁘다. 이 책과 함께 보낸 시간 동안에는, 그 책이 나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의미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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