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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문학공부센터

유종호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소설보다는 시문학에, 한국문학보다는 영문학에 치우친 듯한 느낌도 없잖아있지만 대체로 양쪽 균형을 잘 잡아 차분하게 문학에 대한 썰을 푼다.
 책 사이사이 숨겨진 문학에 대한 저자의 무한한 애정이 이번 독서의 가장 큰 보람!

p53 시적 허용이란 관습은 시인의 악의 없는 거짓말에 대해서 부여한 일종의 면책 특권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시인은 일종의 면허받은 거짓말장이라 할 수도 있다. 서양중세 궁정의 어릿광대가 권력자를 조롱함에 있어서 면책특권을 누렸고 그렇게 함으로써 권력자에 대한 비판이 기성질서와 체제 속에 수용되었듯이 시적 허용은 일정한 효과 창출을 위해서 사실 그리고 넓은 의미의 진실로부터의 일탈을 작품 속에 수용했던 것이다.

p136 소박한 동요조차도 지나친 우의적 해석이나 정치적 해석으로 처리하는 투의 문학교육 방식이 문학에 대한 적절한 독자 반응을 오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우리는 왜 소박한 작품조차도 가당치 않은 우의적 해석으로 처리해야 만족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명쾌한 표현이 자칫 위험한 처지로 몰릴 수 있는 언론 부자유의 상황 속에서 살아온 것과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직설적 언사를 피하고 암시와 둔사를 통해서 표현하는 버릇을 익혔고 독자편에서도 행간의 뜻을 살펴서 <진의>를 파악하려는 버릇과 기술을 익혀 왔다. 따라서 표면 뒤에 숨어있는 진의 파악이 문학 독자에게도 중요한 것으로 떠올랐다.

p146 사람들은 고등수학이나 미적분학을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움을 당연시한다. 또 어려운 수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접근하여 일정 수준의 훈련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또 가령 서양 고전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듣기 훈련을 통한 친숙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를 처음 들어 보는 사람이 그것을 즐길 수 없을 때 음악에 대한 소양이 없음을 자괴하기 마련이지 왜 음악이 어려워야 하느냐고 베토벤을 탓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나 소설에 이르면 왜 문학이 어려워야 하느냐고 탓하고 나선다. 통속소설이나 역사소설 몇 권을 읽어 보았을 뿐인 처지에서 그것을 척도로 해서 소설 일반을 가늠하는 것이다. 시에 관해서도 유행가처럼 쉽게 익혀 쉽게 노래 부를 수 있는 것 같은 안이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사실은 좋은 동시와 범상한 동시를 구별조차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현대시가 어렵다고 말하지만 시가 주는 기본적인 즐거움을 체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이다. 대학입학 학력고사 성적의 분포도가 보여주듯이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외국어나 수학 실력은 전체적으로 극히 낮은 편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글을 읽고 그것을 알아보는 능력도 형편없이 낮다.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의 교육의 실패는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