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너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다. 그렇지 않고 뭐냐? 그러나 너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한 가치도 없어. 너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너에게는 없지 않느냐?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너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언제나 또 옳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너도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생애 전체에 걸쳐,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쳐서 내게로 불어 올라 오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거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가끔씩 '이방인'을 두고 '여친이랑 해수욕 갔다가 햇빛 좀 쪼아댄다고 죄없는 아랍인 쏘아 죽인 얘기가 왜 고전 명작인가요?'라고 시비를 거는 글들을 읽은 적이 있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땐 주인공에게 화가 많이 나기도 했다. 자신의 지리한 일상을 붙들고 놓으려 하지 않는 뻔뻔한 자. 심지어 어머니의 장례식조차 일상을 깨뜨리는 귀찮은 사건으로 치부하는 불효막심한 놈! 직장에서도 승진보다는, 미래보다는 차라리 현재를 택하는 그런 사람.
그런 그의 한심하게만 보이던 모습이 마지막 저 독백을 읽었을 때, 뭔가가 내 머리속을 뽱 하고 쏜 느낌이었다. 이 사람은 나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구나. 죽음조차도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확신하며 받아들이는 주인공에게 우리가 어찌 감히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는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이 자에게, 물먹은 나무토막 마냥 어떤 형체도 없이 흐물흐물한 우리가 어찌 사형선고를 내를 수 있단 말인가. 사르트르의 말대로, 뫼르소는 무죄다. 비록 우리 같이 신념 없는 다수가 신념 그 자체인 뫼르소를 '이방인'이라 비난하고 사형대로 몰아가더라도, 진짜 죄인은 바로 우리들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뫼르소의 외침에 나 또한 그와는 다른 쪽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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