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호가 미혜에게 매일 들려 주는 말들, 몸이 약하다든가 신경이 예민하다든가 하는 말, 아니면 참새처럼 명랑하다든가 귀여운 수다쟁이라든가 하는 말, 우아하다든가 귀티가 난다든가, 아무 옷이나 입어도 어울린다든가,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럽다든가, 남자들을 꼼짝 못 하게 한다든가, 신경질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한번 화나게 했다간 큰일난다든가, 반 여우라든가 바람둥이라든가 하는 말들, 이 밖에서 수없이 많은 말들, 아첨쟁이 남자가 아첨을 좋아하는 여자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에 칭찬이나 애정의 말일 때는 물론이거니와 책망이나 비난의 말일 때조차도 달콤함이 잔뜩 묻어있기 마련인 이 모든 말들이, 나는 내게 건내지기를 바랐다. 벚꽃이 질 즈음 나는 눈처럼 날리는 꽃잎을 맞으며, 이런 감미로운 말들에 비하면 명호가 신입생 환영회날 내게 건넨 여분의 악수라든가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취중에 아는 척해주었던 호의 따위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깨달았다. 나는 잔디동산에 앉아 오래 울었다,
나는 거기서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무엇에서 풀려났다는 해방감보다는 왠지 모를 상실감, 뭔가 중요한 걸 놓쳐버렸다는 슬픔에 안타까웠지만, 그러나 나는 더 이상 허기진 얼굴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자리를 기웃거리는 짓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젖은 방에서 영위되는 잿빛 삶과 대조적인 총천연색 원시의 풍경들이 방 안을 환하게 물들인다. 내가 말하는 동안 둥지 속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나는 죽은 듯이 듣고 있다. 반짝이는 은사슬처럼 엮인 환각들이 열거법의 시냇물을 타고 졸졸 흐른다. 메마른 내 정신과 육체를 닮지 않은, 농익어 터진 과육같이 싱싱하게 흘러내리는 황금빛 꿈들이 율동한다. 꿈은 불가능에 대한 집요하고도 힘찬 편집적 기상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은 결코 아름답고 따뜻하고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소설은 절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읽어서는 안 된다. 겨우 한 틈새밖에 안 되는 푸르름, 그 냉정함은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는 [새의 선물]과도 닮았다.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유려한 문장, 때 아닌 웃음까지도 이 둘은 닮았다. 중학교 때 [새의 선물]을 읽고 큰 변화를 겪었다. 약 10년의 시간을 넘어 이제야 [푸르른 틈새]를 읽었다. 변한 게 있는가? 너무 늦은 사춘기에 하도 자주 변하다보니 이제는 변화가 특별하게 와닿지도 않는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진질의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무심한 척 구석구석 빠짐없이 살펴본다. 그 속에서 지금 당장 어떤 깨달음이나 변화가 온다면 이 이야기는 동화게 되고, 무덤덤하게 자신을 알게 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대로 [푸르른 틈새]가 된다. 다시, 이 소설은 미완의 이야기이다. 일정한 직업도 없고, 연애도 실패한 30대 노처녀가 아버지를 잃고 눅눅한 반지하에서 조용히 읊조린다. 이 미완의 이야기야말로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그 밖의 다른 것들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설령 모든 것이 한층 더 나빠진다 하더라도 나는 말을 믿고, 기억을 믿고, 그 밖의 다른 것들을 믿을 것이다. 닫히지 않은 이야기, 닫히지 않은 믿음, 닫히지 않은 시간은 아름답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미완의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북극을 넘어 경계를 넘어 스스로 공간을 열며 뛰어가는 냄비처럼, 상처로 열린 우리의 몸처럼, 기억의 빛살이 그 틈새, 그 푸르른 틈새를 비출 때 비로소 의미의 날개를 달고 찬란히 비상하는 우리의 현재처럼.....
온통 트인 푸른 하늘보다도 틈새로 비추는 푸른 빛이, 그 간절한 만큼이나 빛나지 않는가. 이 푸르른 틈새가 있기에 우리는 이 누추한 현실-어른을 견디지 않는가. 그렇게, 이 소설은 추하도록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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