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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문학공부센터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피에르 바야르의 추리비평을 두 배로 즐기려면 먼저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즐겁게 완독한 뒤 이 책을 찾아 주세요~

183p 그러나 문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문학 텍스트가 낳는 세계가 불완전한 세계'라는 데 있다. 물론 어떤 작품은 다른 것에 비해 좀 더 완전한 세계를 제시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불완전한 세계라기보다는 등장인물과 부분적인 대화로 구성된, 실재의 주요 부분이 통째로 빠져 있는 '세계의 조각'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한데 정말 중요한 점은 작품의 세계에 나타나는 이러한 결함이 정보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이런 경우라면 역사의 영역이 그렇듯이 탐구 작업을 통해 언젠가는 채우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구조적인 결함'에 기인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세계는 한 번도 완성된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잃어버린 완전성으로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그래서 텍스트는 독자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제공되지 않은 많은 세부 사실을 상실함으로써 그 궁극적 형태를 부여해나가지 않으면 읽히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텍스트를 읽는 이의 주관성으로부터 독립적인 문학 텍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객관화가 가능한 텍스트가 존재하여 서로 다른 여러 독자가 저마다 거기에 자기를 투영시키게 되리라는 생각은 공상에 불과하다. 그런 텍스트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안 된 일이지만 주관성의 프리즘을 거치지 않고 거기에 이르기란 불가능하다. 작품을 완성하는 이는 독자요, 작품이 여는 세계를 다시 닫는 이도 독자다. 게다가 매번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