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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독서/소설의 그림자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도대체 내가 이 책은 어떻게 알게 되고 왜 읽게 되었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라는 생소한 작가를 어디서 알고 책을 찾아 보았을까..정리해 보자면, 어려운 소설이다. 경건하게 읽어야 하는 위대한 소설이다.

1권 - 49p 그러나 인간의 정신은 자신이 우연의 손에 받아들여짐을, 그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신도 주재하지 않는 운의 덧없는 산물에 지나지 않음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삶의 일부분은, 심지어 그 삶이 주목할 가치가 아주 없는 것일지라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출발점을, 근원을 찾는 데에 흘려보낸다.


75p 나는 인간들을 경멸하지 않는다. 내가 인간들을 경멸한다면, 나는 그들을 다스리려 할 어떤 권리도, 어떤 근거도 없을 것이다.

77p 내가 대부분의 인간들보다 뛰어나다고 느끼는 점은 단 하나 있다. 나는 그들이 감히 그럴 수 있는 것보다, 더 자유롭고도 동시에 더 복종적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정당한 자유와 진정한 예속성을 똑같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족쇄를 저주하며, 때로 그것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그들의 시간은 부질없는 방종 가운데 흘러간다. 그들은 더할 수 없이 가벼운 멍에조차도 스스로 만들어 걸칠 줄은 모르는 것이다. 나로서는 권력보다는 자유를 추구했으며, 권력을 추구한 것은 오직, 부분적으로 그것이 자유를 얻기 쉽게 했기 때문이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자유인의 철학이 아니라(그런 철학을 수립하려고 시도한 모든 사람들은 나를 권태롭게 했는데), 하나의 기술이었다. 나는 우리들의 의지가 우리들의 운명에 연결되는 돌쩌귀-그것에 의해 규율이 천성을 억제하는 대신, 오히려 돕게 되는-를 발견하기를 바랐다.

201p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철학이 동원되더라도 노예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르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기껏해야 그 명칭을 바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노예 상태보다 더 교활한 것이기에 더 나쁜 형태들의 노예 상태를 나는 상상할 수 있다. 인간을 어리석고 불만 없는 기계 같은 것으로 변화시켜, 실제로는 노예처럼 지배를 당하면서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게 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거나, 인간적인 즐거움과 여가를 보내는 오락들을 인간에게서 배제하고, 만족들이 가지고 있는 전쟁열만큼 광적인, 일에 대한 취향을 인간에게 키워 주거나 하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정신 혹은 상상력의 노예 상태보다는 나는 여전히 우리의 사실상의 노예 제도를 택하겠다.

2권 - 105p 신이, 잃어버린 산 인간을 대신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가설을 위해 사실을 무시하고 자신의 꿈을 꿈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그 광포한 고집에,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154p 삶의 그 복잡하고 미묘한 형태들, 예술과 행복의 정련 가운데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그 문명들, 탐구하고 판단하는 정신의 그 자유, 이것들은 수많이 집적된 희귀한 기회들과, 한데 모아 놓기가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속되리라고도 기대할 수 없는 여러 조건들에 의존되어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시몬을 타도하더라도, 아리아노스가 아르메니아를 알라니인들의 침략에서 보호할 수 있더라도, 또 다른 거짓 예언자들이, 또 다른 유목민들이 나타날 것이다.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우리들의 연약한 노력은 우리들의 후계자들에 의해 산만하게 계승될 뿐일 것이다. 반대로 선善 자체 내부에 포함되어 있는 과오와 멸망의 씨앗은 제諸 세기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싫증난 세계는 다른 주인들을 찾게 될지도 모르고, 우리에게 현명하게 보였던 것이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아름답게 보였던 것이 추악한 것으로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중략)어리석고 추잡하고 잔인한 유희는 계속될 터인데, 인류는 늙어 가면서 아마도 거기에 새롭게 정제된 끔찍한 일들을 더할 것이다. 내가 누구보다도 그 결함과 오점들을 더 잘 알고 있는 우리 시대는, 아마도 언젠가는 당대와 대조되어 인류사의 황금기의 하나로 간주될지도 모른다.



<창작 노트>241p 내가 1927년경 밑줄을 많이 긋고 많이 읽었던 플로베르의 서한집 한 권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잊을 수 없는 문장을 다시 발견했다. "키케로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는 시기는, 이교의 신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그리스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아, 인간 홀로 존재했던 유일한 시대였다." 내 삶의 한 큰 부분이 이 홀로 있는, 하기야 모든 것과 결부되어 있는, 인간을 정의하고 묘사하고자 하는 데 흘러가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