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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독서/한 권의 책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62p 그 사람의 빛나는 독창성 앞에서 나는 자신을 아토포스라고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분류되었다고 생각한다(친숙한 서류마냥). 그렇지만 때로 이 고르지 못한 이미지들의 유희를 정지시키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왜 나는 그 사람만큼 독창적이지도 강하지도 못할까!"). 그리하여 독창성의 진짜 처소는 그 사람도 나 자신도 아닌, 바로 우리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쟁취해야 하는 것은 독창적인 관계이다. 대부분의 상처는 상투적인 것에서 온다. 모든 사람들처럼 사랑해야 하고, 질투해야 하고, 버림받아야 하고, 또 욕구불만을 느껴야 하고 등등. 그러나 독창적인 관계일 때에는 상투적인 것은 모두 흔들리며, 초월되고, 철수한다. 그리하여 이를테면 질투 같은 것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장소도, 토포스도, 어떤 '결론'이나 담론도 부재하는 이 관계에서는.

72p 그렇지만 정념을(다만 그 지나침을)완전히 감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이란 주체가 너무 나약해서가 아니라, 정념은 본질적으로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감추는 것이 보여져야만 한다. 내가 당신에게 뭔가 감추는 중이라는 걸 좀 아세요, 이것이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하는 능동적인 패러독스이다. 그것은 동시에 알려져야 하고, 또 알려지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것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알아야만 한다. 내가 보내는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라르바투스 프로데오Larvatus prodeo-나는 손가락으로 내 가면을 가리키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내 정념에 가면을 씌우고 있으나, 또 은밀한(엉큼한) 손길로는 이 가면을 가리키고 있다. 모든 정념은 결국에 가서는 그 관객을 가지게 마련이다. 죽기 바로 직전 파즈 대위는 그가 침묵 속에서 사랑했던 여인에게 편지를 쓰지 않고는 못 배겼다. 마지막 극적 사건이 없는 사랑의 봉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호는 항상 승리자이다.

- 짝사랑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이 떠오르네...

88p 사람들은 충족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의 관계는 그릇되게도 일련의 긴 불평에 국한된 것처럼 보인다. 불행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이 무분별한 짓이라면, 행복의 표현을 망가뜨리는 것 또한 죄스러운 일이다. 자아는 상처를 받을 때라야만 말을 한다. 내가 충족되었을 때, 또는 그랬다고 기억될 때 언어는 소심해 보인다.

- 사랑의 시작에 대한 노래들과 이별에 대한 노래들 중 어느 쪽이 압도적인지를 떠올려 보자.

115p '언쟁'의 전형적인 요지는 내가 그에게 준 것(시간, 정력, 돈, 재치, 다른 관계 등)을 다시 그에게 재현하는 데 있다. 바로 이것이 모든 언쟁을 유발하는 대사, "그럼 난, 나는요, 당신에게 안 드린 게 뭐 있나요."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때 선물은 자신이 그 도구인, 힘의 시험을 폭로하는 셈이다. "당신이 내게 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드리겠어요. 그래서 당신을 지배하겠어요."(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축제일에 행해지는 선물 분배 행사potlatch때에는 온 마을이 불살라졌고, 노예들이 학살되었다.

131p 얼어붙은 세상 - 현실 유리 : 사랑하는 사람이 현실과 마주하여 느끼는 부재의 감정이나 현실감의 상실.
-135p 6. 때로 세상은 '비현실적이며'(나는 그것을 달리 말한다), 때로는 '현실 유리적이다'(나는 그것을 아주 힘들게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일한 현실감의 물러감이 아니다(누군가가 말하기를). 비현실의 경우, 현실에 대한 나의 거부는 어떤 환상을 통해 표출된다. 즉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상상계라는 한 기능에 비례하여 그 가치를 바꾼다. 그렇게 해서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과 분리되며, 그의 사랑에 대한 유토피아나 우여곡절을 다른 측면에서 환상함으로써 세상을 비현실화하는 것이다. '현실'이 그를 방해하면 할수록 그는 이미지에 몰두한다. 그러나 현실 유리의 경우 현실감을 상실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어떤 상상적인 대체물도 이 상실을 보상하러 오지 않는다. 콜뤼슈의 포스터 앞에서 나는 '꿈꾸지'않는다.(그 사람에 대해서조차도). 나는 더 이상 상상계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굳어지고 응고되어 불변의 것, 다시 말해 비대체적인 것이 된다. 상상계(일시적으로)가 배제된 것이다. 전자의 경우 나는 신경증 환자이며 비현실적이나, 후자의 경우 나는 미치광이이며 현실 유리적이다.

- 이 꼭지 전체는 어떤 소설이나 시 보다도 훨씬 풍부한 영감으로 가득 차 있다.

196p 반전retournment : "아무리 해도 당신을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은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라는 뜻이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해독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 역시 당신을 해독할 수 없는 것이다.

- 사랑이란 상대방에 대한 완전한 소유에의 갈망

199p 사랑의 모험의 어려운 점은 "누구를 원해야 할지 가르쳐 주세요. 그리고 나선 곧 사라져 버리세요." 라는 데에 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모든 연적은 처음에는 스승, 안내자, 흥행사, 중개자였다.

- 나는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사랑할 사람만 나타나면 된다.

208p 2. 상념이란 항상 내가 상상하며 감동하는 비장한 장면, 곧 연극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이득을 얻게 되는 것도 상념의 이런 연극적 성격 때문이다. 금욕주의적 성향의 이 연극은 나를 크게 하며, 중요하게 만든다. 하나의 극단적인 해결책을 상상하면서(결정적인, 다시 말해 정의된 해결책)나는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예술가가 되며, 그림을, 내 출구를 그려 본다. 그리하여 부르주아 연극의 그 의미심장한(하나의 강렬하고도 선택된 의미가 부여된) 순간처럼 상념이 '보여진다.' 그것은 때로는 작별의 장면, 때로는 한 통의 엄숙한 편지, 또 때로는 오랜 시간 후의 의연함으로 충만한 해후의 장면이기도 하다. 재앙의 예술이 내 마음을 진정시켜 준다.

- 사랑하는 사람은 시인이자 음악가, 소설가, 연극 배우, 한 마디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잖아요?

213p 4. 질투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네 번 괴로워하는 셈이다. 질투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질투한다는 사실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내 질투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할까 봐 괴로워하며, 통속적인 것의 노예가 된 자신에 대해 괴로워한다. 나는 자신이 배타적인, 공격적인, 미치광이 같은, 상투적인 사람이라는 데 대해 괴로워하는 것이다.

- 결국 나도 특별한 사람이 아닌, 수 많은 사랑하는 이들 중 하나였을 뿐...

243p 대답 없음 - 침묵 :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보내는 말(편지나 담론)에 대해 사랑하는 이가 대답하지 않거나, 혹은 인색하게 대답하면 괴로워한다.

- 왜 어제 전화 안 받았어? 문자에는 답장 바로 안 하고? 지금 내 말 듣고 있어? 수많은 연인들의 레파토리

263p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누군가를 감동시키려 하고, 또 압력을 가하고자 한다("당신이 내게 한 짓을 좀 보세요"). 아마도 그렇게 함으로써-대개의 경우가 그러하지만-그의 동정심이나 무관심을 공공연하게 그 사람 탓으로 돌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해서일 수도 있다. 내 고통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 나는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표현히 아닌 기호이다. 나는 내 눈물로 하나의 이야기를 하며, 고통의 신화를 만든다. 그렇게 하여 나는 고통에 적응할 수 있으며, 또 그 고통과 더불어 살아나갈 수 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가장 '진실한'메시지, 혀의 메시지가 아닌 몸의 메시지를 거두어 주는 한 과장된 대화 상대자를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말, 그것은 무엇인가? 한 방울의 눈물도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얘기하리라."

- 음..이건 사랑의 담론이기보다는,, 내게 있어선 삶의 방식 그 자체라고 해야 할까?ㅋ

278p 6. 베르테르가 로테를 '발견했을 때'(막이 걷히고 정경이 나타났을 때), 로테는 빵을 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라디바>의 주인공 하놀드가 사랑한 사람은 걸어가고 있는 여인(그라디바란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것도 저부조의 틀 속에 포착된 모습이었다. 이렇듯 나를 매혹하고 황홀케 하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 있는 육체의 이미지이다. 내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작업하는 모습이 나를 흥분케 한다. '늑대 인간'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젊은 하녀 그루샤도 무릎을 꿇고 마루를 닦고 있었다. 작업중의 자세란, 어떻게 보면 이미지의 순진성을 보장하는 것이기에, 그 사람이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모습, 혹은 그의 무관심의(내 부재에 대해) 기호를 보내면 보낼수록 나는 더 확실히 그를 놀라게 할 수 있으며, 그것은 마치 사랑하기 위해서는 기습과도 같은 고대의 유괴 양식을 감행해야 한다는 것과도 같다(나는 그 사람을 기습하며, 또 그렇게 하여 그는 나를 기습한다. 내가 그를 기습하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 널 돌아보게 만들겠어, 널 내 것으로 만들겠어.. 의 철학적 주해

어떤 문학보다도 풍부한 영감으로 가득 차 있는 책,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깨달음에 얼굴이 화끈거리다..

가능하면 사랑의 경험, 연애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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