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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독서/소설의 그림자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단지 [세계의 끝 여자친구] 말미 신형철의 평론에 언급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5년 만에 다시 체호프의 단편집을 찾아들었다. 고2때인가 어떤 이유에선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어린 마음에 멋 모르고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니 새로웠다. 그때는 이야기가 주는 일차원적인 재미에만 끌려 길이도 짧고 나름 충격적인 결말의 <굽은 거울><어느 관리의 죽음><자고 싶다>등을 흥미롭게 읽고 정작 표제작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뭐야...'했던 감상이 생각났다.
 다 읽고 나니 사람들이 왜 체호프를 '가장 위대한 단편소설 작가'라고 하는지 이해되더라. 무엇보다도 그는 삶의 이해할 수 없는 모순적 측면, 예를 들어 선과 악, 빛과 어둠, 죽음과 삶, 행운과 불운의 미묘한 경계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아는 작가였다.(김연수 작품을 읽은 뒤라 이런 부분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지만)그의 이야기에는 삶의 뒤바뀜, 경계의 넘어섬, 이제까지 알던 세계의 붕괴를 갑작스럽게 깨닫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해가 지는 풍경이 여러 작품에 묘사되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검은 수사>에서 주인공이 검은 수사를 만나기 직전에 세계는 모습을 바꾼다.

136p 가파른 강둑의, 드러난 나무뿌리들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그는 물가로 내려갔다. 놀란 도요새들이 날아올랐고, 오리 두 마리가 도망쳤다. 지는 해의 마지막 빛이 침침한 소나무들 사이로 비쳤지만, 강의 수면에는 이미 저녁 분위기가 완연했다. 꼬브린은 징검다리를 건너 맞은편으로 갔다. 눈앞으로,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어린 호밀들로 덮인 아주 넓은 벌판이 펼쳐졌다. 멀리에 가옥도 사람도 없어,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태양이 막 저물어 노을이 장엄하게 불타는 미지의 신비로운 장소에 다다를 것만 같았다.
 '여기는 정말 넓고 자유롭고 고요하구나!'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꼬브린이 생각했다. '마치 온 세계가 숨어서 나를 바라보며 내가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의 해 뜨는 장면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262p 오레안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교회당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말이 없었다. 새벽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얄따가 보이고, 산 정상에는 흰구름이 걸려 있었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고, 매미들이 울고 있었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단조롭고 공허한 바닷소리가 우리 모두를 기다리는 영원한 잠, 평온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래에서는 바닷소리가, 이곳에 아직 얄따도 오레안다도 없었던 때에도 울렸고, 지금도 울리고 있고, 우리가 없어진 후에도 똑같이 무심하고 공허하게 울릴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 변화 없음에, 우리 개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에,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지상의 끊임없는 삶의 움직임에 관한, 완성을 향한 부단한 움직임에 관한 비밀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바다와 산과 구름과 넓은 하늘이 펼치는 신비로운 풍경 속에서 여명을 받아 더욱 아름답고 편안하고 매혹적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와 나란히 앉아, 구로프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가 존재의 고결한 목적과 자신의 인간적 가치도 잊은 채 생각하고 행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그렇게 그들은 낮과 밤이 뒤바뀌는, 세계가 몸을 뒤트는 경계에서 전율에 휩싸여 어떤 변화를, 삶의 이면을 엿본다. 위의 대목에 이어지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의 이런 부분들,

266p "조금 전 당신이 한 말이 옳았소. 그 철갑상어는 냄새가 아주 고약했어." 평소에 하던 이 평범한 말이 어쩐지 갑자기 구로프를 짜증나게 했다, 이 말이 모욕적이고 불결하게 여겨졌다. 얼마나 야만적인 습관들이며 야만적인 사람들인가! 정말 의미 없는 매일 밤이고, 흥미도 가치도 없는 나날들이다! 미친 듯한 카드놀이, 폭식, 폭음, 끝없이 이어지는 시시한 이야기들. 쓸데없는 일과 시시한 대화로 좋은 시간과 정력을 빼앗기고 결국 남는 것은 꼬리도 날개도 잘린 삶, 실없는 농담뿐이다. 정신 병원이나 감옥에 갇힌 듯 벗어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이런 갑작스런 깨달음의 모습을 체호프는 잡아낸다. <문학 교사>의 이런 부분들도 뒤틀린 세계의 틈새에 비친 다른 세계를 보고 만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194p 니끼찐은 촛불을 불어 끄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자고 싶지도, 누워 있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텅 빈 엄청나게 큰 창고 같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새롭고 특별한 생각이 마치 기다란 그림자 형태로 떠도는 것을 느꼈다. 가정의 고요와 행복에 미소 짓고 있는 램프의 부드러운 불빛 외에도, 그리고 자신과 고양이가 평화롭고 달콤하게 살고 있는 이 작은 세계 외에도, 다른 세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자 불현듯 그 다른 세계를 열정적으로, 마음이 아프도록 갈구하게 되었다. 공장이나 커다란 작업장에서 몸소 일한다거나 강단에 서서 강의하거나 책을 써서 출판하고 떠들고 지치고 힘들어하는 그런 다른 세계를....자기 자신을 망각하게 되고, 아주 단조롭게 느껴지는 개인의 행복에 무심하게 될 정도로 자기를 사로잡을, 그런 무엇을 갈구하였다.

 이를 본 자는 다시는 이전의 익숙했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작품 대부분의 결말에서 주인공들이 죽거나 비극적으로 끝맺어지는 것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문학 교사> <검은 수사> <6호 병동>의 한없이 하강하는 결말을 보라.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이다.
 그들, 다른 세계를 보고 만 이들은 우리는 불쌍하다고 동정하고 연민해야 할까?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어쩌면 이런 순간들로 인해 인간은 근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구원일 수도 있다고. 물론 그 길은 이전의 평온하고 안전한 길에 비하면 고통에 몸부림치게 되겠지만, <대학생>의 이런 결말에의 가능성도 우리에게 열려 있다.

169p 그러자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서 기쁨이 일기 시작했다. 그는 심지어, 숨을 쉬기 위해 잠시 멈춰 서야 했다. 그는 생각했다. 과거는 현재와, 잇달아 발생하는 사건들의 끊임없는 사슬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는 방금 자신이 이 사슬의 양 끝을 본 것처럼 느껴졌다. 한쪽 끝을 건드렸더니 다른 한쪽 끝이 떨리는 것 같았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 산 위로 올라가서 그는 자신의 고향 마을과, 차가운 자줏빛 노을이 가느다란 한 줄기 빛으로 빛나는 서쪽을 바라보며, 동산과 제사장의 마당에서 인류의 삶에 방향을 제시했던 정의와 아름다움이 끊어지지 않고 지금 이날까지 계속되고 있고, 분명히 인류의 삼과 이 지상 전체에서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을 형성해 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젊음과 건강과 힘의 감각-그는 이제 스물두 살이었다-그리고 행복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행복에 대한 형언할 수 없이 달콤한 기다림이 조금씩 그를 사로잡아, 삶은 매혹적이고 경이로우며 또한 고귀한 의미로 가득 차 있다고 여겨지게 했다.

뱀꼬리@ 체호프의 단편집은 여러 출판사에서 다종다양하게 출간되어 있다. 이번에 내가 읽은 판본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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