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친독서/소설의 그림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요즈음 그녀는 책 한 권을 읽는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한창 내리던 눈이 그치고 찾아오는 밤, 흰 길에서 까만 밤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에는 아무래도 클래식이 어울려요. 아이폰으로 <해설이 있는 클래식>이라는 어플을 받아 듣던 중에 브람스 3번 교향곡에 단숨에 매료되었어요. 그 곡에 붙어 있는 해설을 그대로 옮겨 보자면 이렇습니다.

 

영화 음악으로 사용되어 친근한 3번 교향곡 3악장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수아즈 사강이 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란 소설이 Goodbye Again 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브람스의 3번 교향곡 3악장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이 곡을 브람스 작품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곡 중의 하나로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는 순진한 청년이 겪는 사랑과 고독의 갈등을 그린 작품입니다. 영화 Goodbye Again은 1961년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배급 영화로써 잉글리드 버그만과 안소니 피킨스 그리고 이브 몽땅이 출연한 멜로영화입니다. 잉글리드 버그만이 40대의 파리 여성으로 열연한 영화로 유명합니다. "Do you like Brahma?" 는 영화 중 연상의 여인을 음악회에 초대하면서 물었던 주인공의 대사의 일부랍니다.

 1883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그의 교향곡 중 가장 힘이 있고 웅장하며 베토벤의 3번 교향곡 영웅과도 곧잘 비교됩니다. 다만 베토벤의 영웅보다 강렬함이 부족하다는 평도 있지만 경쾌한 구성과 풍부한 악상은 브람스답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브람스의 평화적이고 목가적인 교향곡 제 2번이 흔히 '전원'이라 불리듯이 이 3번은 '영웅-Eroica'라고 불립니다...이하 후략

 

여기 40대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한 여성과, 그녀가 오랫동안 사랑해 온 한 남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고, 그 역시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동시에 자유를 사랑하기에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에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 그로부터 고통스러워 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 젊고 아주 잘 생긴 청년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라는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이 소설의 배경음악이 브람스의 3번 교향곡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다 읽은 뒤에 밀려드는 끝없는 고독감에 저는 이 소설이 너무 싫어지면서도 좋아져 버렸어요. 이 세상의 모든 소설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장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아직도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죠.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이 말하고 있는 사랑의 모습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이해할 수 밖에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