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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홀랑보기

정민의 한시 미학 산책 p20 흥취를 지닌 시는 어떤 시인가. 그것은 투철하고도 영롱하며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엄우는 이를 다시 몇 가지 비유로 제시한다. 공중지음, 상중지색, 수중지월, 경중지상이 그것이다. 허공에 울려 퍼지는 소리나 형상 속에 깃들어 있는 미묘한 색채, 물속에 찍한 달, 거울 속의 형상은 모두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분명히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물속의 달은 잡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흔들려 사라지고 만다. 달의 실체는 하늘에 떠 있고, 물은 그 실체를 투영할 뿐이다. 공중으로 퍼져가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물속에 녹아 있는 소금은 어떤가. 다만 짠맛으로 소금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을 뿐, 만지거나 직접적으로 볼 수는 없다. 흥취 또한 이와 같다. 시인의 정신은 저만치 허공에 떠 있고.. 더보기
[펌] 스티브 잡스의 세 가지 이야기 이 글은 애플컴퓨터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EO인 스티브 잡스가 2005년 6월 12일 한 연설입니다. ============================================================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대 졸업식 축사. 2005년 6월12일. 오늘 나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의 한 곳을 졸업하면서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이 내가 대학졸업식이라는 데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우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들에게 내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 더보기
[펌] 목마른 계절, 전혜린 오랫동안 나이를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지금 내 나이 이십구세. 그러니까 액년이다. 그러나 올해 나는 특별히 재앙이나 불행을 겪지 않고 지났다. 만성적 재앙으로 침체를 들 수 있을 뿐이다. 직업이나 모든 면에서 올해는 무발전의 해였다. 꽤 미신가인 나는 올해 초부터, 소위 아홉 자가 든 올 해를 두려워하면서 무슨 카타스트로프를 예상하고 있었으나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어느 해나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흘러갔다. 연령의 중량도 지금 내 펜에 쓰이는 대상으로서만 비로소 내 의식의 표면에 떠오를 정도로 매우 바쁘고 피곤한 한 해였다. 생각해 보니 피로가 심했던 것이 올해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수레에 끼워진 바퀴처럼 자기 자신이나 주위에 대해 신선한 흥미를 잃고 타성처럼 회전하고 있었던 생활이 단적으로 말해서 .. 더보기
생의 한가운데 p21 때때로 나는 아직도 인기척이 없고 모든 것이 회색인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깹니다. 그러면 나는 공포를, 목을 죄는 공포를 느낍니다. 그럴 때면 어떤 위대한 것에 대한 상념도, 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나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이 공포와 완전히 혼자인 것입니다. 공포와 가장 무서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려고 해봅니다. 그러면 나는 여러 개의 대답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내가 이 생에서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리라는, 아무것도 훌륭한 것을 이룰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내 생명을 그저 아무렇게나 흘려보내고 참으로 살지 않았으리라는 공포입니다. 또는 내가 어떤 과오를 범하고 그 과오가 나의 발전을 좁은 범위 내에서 움직이도록 판결지워 버리리라는 공포입니다. .. 더보기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즐겨 마시는 커피의 종류를 알고, 네가 하루에 몇 시간을 자야 개운함을 느끼는지 알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인가?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네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네 귀에 가닿을 때의 그 느낌을 모른다. 일시적이고 희미한, 그러나 어쩌면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울림일 그것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나와 너는 대체로 타자다. 나는 그저 '나'라는 느낌, 너는 그냥 '너'라는 느낌.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 더보기
윤고은의 1인용 식탁 p25 어릴 때는 홀수가 싫었다. 무리를 굳이 둘씩 나누는 상황이 종종 일어났기 때문이다. 운동장에서, 수학여행 가는 버스에서, 놀이기구에서, 관계는 '둘'로 정의되었고, 전체가 홀수였다면 한명은 꼭 남았다. 3-2=1, 5-2-2=1, 7-2-2-2=1, 이런 계산법으로 인해 외톨이가 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정원이 48명인 반에서 나는 마음이 편안했고, 47명인 반에서 마음이 불안했다. 48명인 반에서 일어나는 전학이나 결석, 조퇴와 같은 일들도 역시 불안했다. 어릴 때 운동장이나 교실 안에서 겪었던 홀로됨의 어색함은 결국 교문 안에서만 유효할 뿐, 그 당시에는 중요했던 그 문제가 사실 미니어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그 순간부터 정말 비극이 시작된다. 교문 밖에서 울타리도 없이 벌어지는 .. 더보기
32년생 젊은 소설가 에코의 고백 p63 텍스트는 모델 독자를 만들기 위해 고안된 장치이다. 모델 독자는 '무조건 옳은' 추측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텍스트는 모델 독자에게 무한하고 다양한 추측을 유도할 수 있다. 경험적 독자는 텍스트가 상정한 모델 독자에 대해 추측하는 배우에 불과하다. 텍스트의 의도는 기본적으로 텍스트를 추측할 수 있는 모델 독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모델 독자의 과제는 경험적 작가가 아닌, 궁극적으로 텍스트의 의도와 일치하는 모델 작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p64 이렇게 모든 독해 행위는 독자의 능력(독자가 갖고 있는 지식의 수준)과 주어진 글의 경제적 능력(즉 텍스트에 대한 이해와 흥미를 확대하면서도 문맥을 통해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다. p108 결국 나는 문제를 가벼이 넘길 수 .. 더보기
햄릿을 수사한다 피에르 바야르의 추리 비평의 흥미진진한 세계 속으로 고고~ p56 텍스트는 작품이 쓰이고 난 이후에, 그것도 글쓰기로부터 한참 멀어져서 독서 중에 개별적인 탄생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보편적 텍스트라는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으리라는 희망 없이 비평 탐구를 위한 새로운 영역으로 제시된다. p64 문학 작품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그 불완전함이 어떤 것이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문학 작품도 완벽한 세계를 이루고 있지 않다. 문학 작품은 이미 존재하는 세계에서 요소들을 빌려오지만 세계를 통째로 보여주거나 체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개입 없이는 충분하지 않을 단편적인 정보들만 제공한다. 그러므로 이 불충분한 문학 공간을 세계의 조각들이라 말해야 더 맞을 것이다. 그렇기.. 더보기
햄릿의 유명한 독백 94p 제3막 제1장 56-89행 햄릿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죽는 건-자는 것뿐일지니, 잠 한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죽는 건, 자는 것. 자는 건 꿈꾸는 것일지도-아, 그게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잠 속에서 무슨 꿈이, 우리가 이 삶의 뒤엉킴을 떨쳤을 때 찾아올지 생각하면, 우린 멈출 수밖에- 그게 바로 불행이 오래오래 살아남는 이유로다. 왜냐면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비웃음, 압제자의 잘못, 잘난 자의 불손, 경멸받는 사랑의 고통, 법률의 늑장, 관리들의 무례함, 참을성 .. 더보기
당신들의 천국은 사라지지 않는다 p64 하기야 사람의 허울을 뒤집어쓰고 난 자 어느 부처님이라고 자신의 동상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인가. 누구에게나 가슴속 깊은 곳에는 그런 동상이 하나씩 숨겨지고 있게 마련인지 모른다. 차이가 있다면, 사람에 따라 그것을 어떻게 숨기고 지내느냐가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참으면서 그 동상의 환상에서 끝끝내 눈을 감고 견딜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더욱 무리한 주문을 말한다면, 어떻게 그 단단하게 굳어진 동상의 벽을 아픔을 무릅쓰고 스스로 헐어나갈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부임 연설 따윌 참지 못한다고 원장을 탓할 수는 없었다. 약속을 해도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약속이 원장의 가슴 속에 은밀히 숨어 있을 그의 동상과 얼마나 가깝게 상관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원장 자신이 그의.. 더보기
독 만드는 공장의 공원들은 내 좌심방과 우심실 사이, 독 만드는 공장의 공원들 모두에게는 음독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았고 자신이 하는 일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조도 받았다 독이 어디로 팔려나가는지 수출되는지 내수용인지 공원들은 알지 못한다 아주 늦은 밤 검은 개가 짖고 큰 차가 오고 셔터소리 두 번 들리면 독이 든 상자는 밤이 조금만 더 잠잠해지길 기다린다 공장에는 실험용 흰쥐 수백 마리가 살기도 한다 실험으로 죽은 쥐들의 혀에서 주사기로 감정을 빼내 만들어진 독은 개별 포장되기도 한다 공원들의 하루 목표량은 독 30밀리그램으로 하루 아홉 시간 동안 어둔 창살 안에서 만들어지는 양이라 한다 이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독은 독으로서가 아니라 식용으로도 쓰인다는 사실을 공원들도 대표도 모른다 하지만 눈이 사시인 생산직 소년의 귀띔에 .. 더보기
두근두근 내 인생 다시읽기 p11 이제 나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말은 거의 다 안다. 중요한 건 그 말이 몸피를 줄여가며 만든 바깥의 넓이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바람이라 칭할 때, 네 개의 방위가 아닌 천 개의 풍향을 상상하는 것. 배신이라 말할 때, 지는 해를 따라 길어지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쫓아가보는 것. 당신이라 부를 때, 눈 덮인 크레바스처럼 깊이를 은닉한 평편함을 헤아리는 것. 그러나 그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일 것이다. 바람은 자꾸 불고, 태어난 이래 나는 한번도 젊은 적이 없었으니까. 말들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까. p51 평소 혼자 있는 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어왔다. 처음엔 학교 진도를 따라가려고 펼친 거였는데, 나중에는 심심해서 절로 찾게 되었다. 책은 내게 밤새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더보기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 희망의 교육, 학습자 중심의 교육..뻔한 말이지만 가장 근원적인 개념들. 우리는 무대에서 내려와 학생들과 함께 걸어나가야 한다. 조벽 교수님의 말처럼 희망을 가진다면... p24 희망을 느낄 것인가 느끼지 않을 것인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상황에 희망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망을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우울증을 남몰래 즐기는 사람도 있고 신경질을 '무기'로 삼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교육자는 일반인과 달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육이란 학생들의 희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교육입니다. 교육자는 희망의 원천이어야 합니다. p74 사지선다형 문제는 문제의 뜻도 모르고 답도 모른 채 눈감고 대충 '찍어.. 더보기
존 파울즈의 마법사 사실 이 소설의 복잡한 마법은, 이 한 마디면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단순해진다. (스포임) "왜 그들은 그 한 명을 위해 이 모든 걸 꾸며냈단 말인가?" 하지만 소설에서 명확한 의미를 찾아내려는 사람보다 더한 멍청이는 없다. 상권 p168 "그건 내가 우연에 대해 말한 것과 관계가 있소.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환점 같은 시간이 찾아오는 법이오. 그런 순간이 오면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만 하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늘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하는 것이오. 당신은 이것을 알기에는 너무 젊소. 여전히 뭔가가 되어 가고 있으니까. 어떤 존재인 것이 아니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죠." "아마가 아니라 확실한 얘기요." "만일 그 .. 더보기
순수의 시대 시작은 [정여울의 시네마 다이어리]-여기서 다룬 영화 중 가 있었다. 영화를 먼저 본 뒤 흥미로워진 나는 이디스 워튼의 원작까지 찾아 읽었다. 반해버렸다. 영화에서 시간상 생략한 부분, 영화로는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부분들을 섬세한 글로 읽고 나니 이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로 내게 다가왔다. 아름답도록 슬픈 이야기이다. p49 현실적으로 그들은 모두 비밀 문자의 세계에 살았다. 현실은 어떤 말이나 행동, 심지어 생각에도 반영되지 않고, 오직 자의적 신호들의 체계로 표현되었다. p79 "뉴욕은 그렇게나 미로인가요? 나는 그냥 곧게 뻗은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5번 대로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그것과 교차하는 무수한 다른 길들처럼요!"그녀는 희미한 반감을 감지한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온 얼굴에.. 더보기
유종호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소설보다는 시문학에, 한국문학보다는 영문학에 치우친 듯한 느낌도 없잖아있지만 대체로 양쪽 균형을 잘 잡아 차분하게 문학에 대한 썰을 푼다. 책 사이사이 숨겨진 문학에 대한 저자의 무한한 애정이 이번 독서의 가장 큰 보람! p53 시적 허용이란 관습은 시인의 악의 없는 거짓말에 대해서 부여한 일종의 면책 특권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시인은 일종의 면허받은 거짓말장이라 할 수도 있다. 서양중세 궁정의 어릿광대가 권력자를 조롱함에 있어서 면책특권을 누렸고 그렇게 함으로써 권력자에 대한 비판이 기성질서와 체제 속에 수용되었듯이 시적 허용은 일정한 효과 창출을 위해서 사실 그리고 넓은 의미의 진실로부터의 일탈을 작품 속에 수용했던 것이다. p136 소박한 동요조차도 지나친 우의적 해석이나 정치적 해석으로 처리하는 .. 더보기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의 소설은 읽을 때 거침없이 잘 읽히고 내용도 마음에 쏙 들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그런데 다 읽고나면 알쏭달쏭 뭐가 뭔지 모르겠다. 뚜렷한 이미지가 남기보다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비스럽고 강한 무언가가 남는 간질간질한 느낌? 동트기 직전의 기묘한 어둠과 빛 그 짧은 순간의 이상한 기분? 이번 소설의 제목 '보이지 않는'이 폴 오스터의 문학을 설명하는 하나의 단어가 아닐지ㅎㅎ p95 공포란 좋은 것일세. 공포는 우리로 하여금 모험을 감행하게 하고 또 우리가 머무는 통상적 범위를 초월하게 해준다네. 안전한 땅 위에 서 있다고 느끼는 작가는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지 못하는 법이지. 자네는 글쓰기의 장벽을 말했는데, 누구나 그런 장벽에 부닥치지. 대체로 글이 잘 안 나가는 것은 작가의 사고방식에 문.. 더보기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를 직접 만나게 되는 자리에 앞서 재독, 정말이지 흥미진진한 책이다. p26 독서는 우선 비독서라 할 수 있다. 삶을 온통 독서에 바치는 대단한 독서가라 할지라도, 어떤 책을 잡고 펼치는 그 몸짓은 언제나 그것과 동시에 행해지는, 그래서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그 역逆의 몸짓을 가린다. 즉, 그 책 외의 다른 모든 책들, 어떤 다른 세상이었다면, 선택된 그 행복한 책 대신 선택될 수도 있었을 다른 모든 책들을 잡지 않고 덮는 몸짓을 가리는 것이다. p56 무질과 마찬가지로 발레리는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집단 도서관의 어법으로 사유하도록 부추긴다. 문학을 깊이 성찰하고자 하는 진정한 독자에게는 어떤 책 한 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책들이 중요하며, 어떤 한 책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그.. 더보기
소녀들의 심리학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레이첼 시먼스의 [소녀들의 심리학] p29 이후 미네소타 대학교의 심리학자 몇 명이 이 결과에 근거하여 공격적인 행동을 세 가지 범주로 규정했다. 바로 관계적, 간접적, 사회적 공격이다. 관계적 공격은 "관계나 수용, 우정, 소속감의 느낌을 훼손(혹은 훼손하겠다고 위협)하여 타인을 해치는" 행동을 포함한다. 관계적인 공격 행동은 누군가를 벌하거나 자기 멋대로 하려고 상대를 무시하는 것, 보복하기 위해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것, 부정적인 신체 언어나 표정을 사용하는 것, 누군가의 관계를 방해하거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관계를 끝내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이때 가해자는 피해자와의 우정을 무기로 사용한다. 관계적 공격과 비슷한 것으로 간접적 공격과 사회적 공격이 있다. 간접적으로 .. 더보기
기린은 환영이다 평일 오후에 동물원을 찾는 사람들이란 뭔가 이 세상 아닌 다른 세상을 보고 싶은 욕망에 찌든 족속들일 테다 동물원 초입에서 만난 기린은 이곳이 가짜의 세상일 거라는 확신을 갖게 만든다 기린은 공기 속에 감춰진 물감들이 스스로 몸을 풀어 새겨놓은 허공의 환영과도 같다 인간의 키보다 서너 배 높은 허공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저 커다란 짐승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면 기린은 실제보다 더 커 보인다 액정에 뜬 기린의 모습을 기묘하다는 듯 바라보는 이 사람은 사실 기린의 눈으로 보건대, 긴 얼룩무늬 혀로 한번 스윽 핥으면 사라질 우주의 얼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기린은 그 맛을 짜게도 달게도 느끼지 않는다 그저 날숨 다음에 그 큰 콧구멍으로 빠져나간 달짝지근한 공기의 파동만큼만 스스로의 움직임을 자각할 뿐이다 기린을.. 더보기